달라진 금융당국, '자율' 대신 '압박'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9.04.30 14:13
글자크기
대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금융당국의 자세가 달라졌다. 30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가 기점이다.

불과 몇 주 전 모습과 딴 판이다. '자율'을 강조했던 이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채권은행 중심의 상시 구조조정'이란 원론적 언급도 숨었다.

대신 '밀착점검' '엄중 책임' '점검' 등 수위 높은 단어가 그 자리를 채웠다. 전면에 나서길 꺼렸던 당국의 기존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례적 행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날 회의를 "은행들을 향한 메시지"라고 요약했다. 근저에는 무엇보다 은행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지난 연말 이후 업종별 구조조정을 채권은행 중심으로 해왔지만 결과가 별로라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구조조정을 하다보면 충당금을 더 쌓게 돼 단기 실적이 악화되는 만큼 은행들이 적극적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비상'인데도 '상시'처럼 움직인다는 답답함도 팽배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금융기관이 소극적이거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로 일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청와대는 금융기관 행태에 대한 경고성 멘트라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주채권은행이 잘못하면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 "은행장이 직접 구조조정 업무를 챙겨랴"며 압박했다. 구체적으로 "구조조정 진행상황을 수시로 제출받고 현장 점검도 실시하겠다"고도 했다.

대통령과 금융감독수장이 작심한 듯 한목소리로 은행을 질타한 것 자체가 향후 구조조정 방향과 강도를 가늠케 한다. 이와관련 당국 관계자는 "청와대와 당국의 인식 공유가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대기업 구조조정 관련 '실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초조함도 엿보인다. 일부 경제 지표가 호전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거세지는 기업의 저항도 당국의 발길을 재촉하는 이유다.

이 대통령이 "우리 경제에 대한 일부 긍정적 전망과 경기회복 기대감이 살아나면서 다소 경계를 늦추는 조짐도 있다"며 "아직 위기상황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원장은 오히려 "지금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때"라며 거듭 '속도'를 강조했다.



속도뿐 아니라 강도도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선 '잔인한 5월' '피의 5월'의 예고인 셈이다. "애정은 갖되 냉철한 판단으로 결단할 수밖에 없다"(이 대통령)는 말이 마치 '살생부' 작성을 마무리하며 던지는 지시로 들린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