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학생도 다니는 '한국식 학원'의 비밀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김지민 기자 2009.03.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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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일자리, 서비스업에 있다 1부-②] '수준별 맞춤교육' 미국 현지화 성공

넷스케이프 설립 초기에 참여했고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 부사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제임스 샤는 대만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 미국 정보기술(IT)산업의 주역으로 활동한 샤는 1997년 영어콘텐츠 제작자인 제리 쳉과 함께 라이브ABC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라이브ABC는 토플과 토익 등 외국어능력 평가 전문기관인 미국교육평가원(ETS)의 아시아·태평양 총감독 수전 친 여사의 도움을 받아 어학연수를 대체할 만한 수준의 3차원(3D) 가상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IT기술력은 샤가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은 패밀리레스토랑, 공항, 커피전문점 등 일상의 다양한 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어를 종류별로 가상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기술로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어 현재 대만 영어콘텐츠의 90%를 점했을 뿐만 아니라 수출되고 있다.

비영어권 국가인 대만이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수출한다는 사실이 놀랍긴 하지만 이같은 시도는 같은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IT기반이 토대가 되는데다 열성적인 영어교육열에 힘입어 영어 콘텐츠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한상진 한국 라이브ABC 대표는 "e러닝은 스크린골프장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접하기 쉬운데다 한번 개발하면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며 "한국은 선진국보다 콘텐츠 개발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e러닝사업을 수출상품으로 적극 키워볼만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스닥 상장기업인 확인영어사는 올해 안에 영어 e러닝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수출할 계획이다. 이미 중국 저화하이후이 유한공사와는 영어교육 콘텐츠를 공급하기로 계약했고 이어 일본 등 다른 비영어권 국가에도 e러닝 프로그램을 공급할 예정이다.

저화하이후이 유한공사의 슝동지오 대표는 "이미 중국에 들어온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해 보았지만 학교, 학부모와 교사 등 모든 대상의 수준에 맞춰 성적을 상승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은 확인영어사 콘텐츠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교육 수출은 오프라인 영역에서도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김지한 사장(40)은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학원이 인기를 끌어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학원프랜차이즈사업을 개시했다.

미국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SAT) 교재를 개발, 인근 학원 20여곳에 공급하다 올해부터는 아예 '하우스 오브 리딩'(House of Reading)이라는 독자브랜드로 학원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른 한국계 SAT학원들이 주로 교민이나 조기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김씨의 학원은 99%가 미국 학생이다. 한국식 학원교육이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대표적 사례다.



김 사장은 미국 학원들의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고 판단, 학원프랜차이즈사업에 성공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예감했다. SAT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훌륭한 교재도 필요하지만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잘 훈련된 강사도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학원들은 성적관리, 학부형관리, 강사관리, 교재관리 등이 모두 취약했다. 이 분야에서는 한국식 학원시스템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해 학원을 열었고 이는 적중했다. 캘리포니아 백인 상류층은 나날이 심화되는 입시경쟁 속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김 사장의 학원을 택했다.

해외에서 한국식 학원으로 성공해 한국으로 역진출한 경우도 있다. 미국 16개주에서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씨투어학원(C2)은 경기 분당과 일산, 서울 잠실 등 한국으로 역진출했다.



씨투어학원은 1997년에 미국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한인 2세 청년이 소규모 과외 형태로 시작해 키운 학원으로 현재 프린스턴리뷰, 카플란 등 미국의 양대 사교육업체와 어깨를 견줄 만큼 성공했다.

특히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는 학원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백인일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어학원이 백인 학원생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에 대한 개별 접근식 교육법 덕분이었다.

김진석 씨투어학원 한국지사 사장은 "미국 공교육은 상위 40%를 위해 강의하는 시스템이라 공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다"며 "이런 학생들을 위해 한국 학원식으로 맞춤형 교육을 제공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흔치 않은 교육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 있는 유아 영어교육원에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키즈칼리지도 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 사교육이다. 이 업체는 2005년부터 중국 베이징에 진출, 유아 영어교육원을 설립해 운영한데 이어 러시아로까지 프로그램 수출지역을 넓혔다.

키즈칼리지는 철저하게 중국이나 러시아 등 비영어권 국가에 초점을 맞춰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수출한다. 특히 교재는 물론 강의매뉴얼까지 개발해 어느 국가에서든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강의매뉴얼을 개발하는데 주력한 이유는 '교육은 근본적으로 책이 아닌 사람이 가르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한국식 사교육시스템, 특히 학원의 수출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주로 해외교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 LA에서 삼라한의과대학병원을 운영중인 김재홍 사장은 "미국에서도 입시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자생적으로 입시 전문학원이 생기고 있다"며 "한국식 학원교육은 경쟁력이 있는데 대부분 교민이나 조기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구몬이 미국에서도 사업을 벌이는데 일본 색깔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며 "반면 한국 학원들은 처음부터 한인사회를 집중 공략하는 쉬운 방법을 택해 후에 현지화하는데 벽에 부딪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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