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자본 허용 '병원 대형화'부터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2009.03.1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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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병원서 벗어나자]<1>의료, 더이상 예외일 수 없다

"의료를 산업으로 안 보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첫 공개강연에서 한 말이다. 윤 장관 취임 한달, 재정부는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내놓는 한편 70%를 웃도는 국민이 영리병원 도입을 찬성하고 있다는 인식조사 결과까지 발표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6년 넘게 들고만 있던 정책을 가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재정부는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뜯어고칠 생각이다. 진입장벽 해소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골자다. [편집자주]

2008년말 현재 우리나라 병.의원의 97%(5만2143개)는 의사 개인이 소유했다. 의사가 자기돈 들여 운영하는 자영업 형태다. 나머지 3%는 대학이나 국가, 지자체, 의료법인이 운영한다.



이들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다. 말 그대로 '영리행위'를 하고 있다.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를 뿐 자영업자라는 점에서 동네 구멍가게와 다를 게 없다. 의료분야에서도 이익을 위한 상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더이상 논란의 대상도 아니다.

↑설립구분 별 의료기관 현황(2008년 12월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설립구분 별 의료기관 현황(2008년 12월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리법인의 병원설립을 불허한다. 의사 개인은 병원을 크게 지어서 돈을 벌어도 되지만 법인은 영리를 추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일반인들이 병원에 투자하는 일도 막는다. 굳이 병원을 하려면 재산을 나라에 귀속해야 한다. 이같은 규제로 인해 국내 대형병원 대부분은 대학 부속이거나 대기업 공익재단 소속(삼성의료원-삼성생명공익재단, 서울아산병원-아산재단 등)이다. 외부자본의 투자를 받을 수도, 이익금을 배당할 수도 없는 비영리법인 형태다.



물론 이들 병원이라고 해서 땅을 파먹고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이익을 추구한다. 추가로 외부자본을 들여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요즘 나오는 첨단 의료기기를 도입하려면 큰 돈이 필요하다. 환자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만 의료의 질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병원산업을 민간자본에 개방하는 방안은 오래전부터 논의돼온 사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만들어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방안으로 의료시장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지지부진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추진되는 듯 했으나 '의료민영화'로 개념이 변질돼 구체화되지 못했다.

재정부는 '병원주식회사'를 허용하면 민간자본으로 첨단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돼 고급의료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굳이 해외로 치료받으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해외환자도 유치할 수 있어 의료서비스 수지 적자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관련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수지 적자는 2008년 상반기에만 3110만달러 규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서 쓴 의료비는 7200만달러에 달하는 반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지출한 의료비는 309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규제개혁이 시급한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후진적 규제가 시장을 망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관 설립에 외부투자를 봉쇄, 대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대출이자가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형국을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높은 의료수준을 가진 의사들이 자기의 뜻을 펴보기도 전에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로인해 고통받는 것은 다름아닌 의료소비자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규제로 정상적인 민간자본이 의료시장에 투입되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편법 등을 통해 암암리에 돈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돈은 끊임없이 수익을 쫓아 흘러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비의료인이 편법으로 의료기관 개설에 관여, 갖가지 방식으로 수익을 가져가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유령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방식이나 의료기기 리스비용을 지급하는 방식, 건물 임대료를 내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의료기관이 한둘이 아니다.

의료인 1명이 1개의 의료기관만 소유하도록 하는 조항도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어떤 사업이든 1호점이 호황이면 속속 2, 3호점이 생겨나게 마련. 하지만 의료기관의 경우 1명의 주인이 여러개의 의료기관을 소유, 운영할 수 없어 표면상 주인과 실제 주인이 따로 존재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와 법원이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불법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데 반해 법원은 의사의 '진료권'만 보장된다면 문제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의료계 관계자는 "후진적 법규를 앞세우면서 정작 규제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이라며 "부가가치 창출은 둘째 치고 기형적인 시장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라도 규제개혁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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