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취업못한 무능력자' 취급 싫어요

송선옥 황국상 기자 2009.02.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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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행정인턴들의 비애

-성희롱·은행 심부름·경시발언 등
-10개월 머물다갈 '비정규직'으로 치부키도
-"양적고용으로 오히려 사회적 비용 증가"

“어제 기분이 별로였어요. ㅠ ㅠ 저희 부서엔 인턴이 두명인데 저말고 다른 분이 어느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공무원들이 그 인턴한테 축하한다고 말을 전해주고.. 같이 인턴하다가 먼저 나가게 되면 남는 사람은 어떤 느낌인지 잘 알면서 미리 말좀 해주지. 괜히 ‘취업못한 무능력자’ 이런 느낌 아시죠? 다른 주사님은 지나가면서 “넌 교사 자격증도 없어?” 하시는데 서운하더라고요.”



인터넷 행정인턴 카페에서 만난 한 행정인턴 A씨는 섭섭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풀었다.

A씨는 “매일 하는 일이 잔 업무니까 내가 배우는 게 있는 걸까 생각도 드는데 인턴제가 점점 싫어지네요, 시대를 잘못 만나서…”란 말로 글을 끝냈다.



◇은행 심부름, 못참겠어요=인턴 제도가 외국계나 일반 기업에서 시작될 때만 해도 ‘선망’ 그 자체였다. 인턴 근무를 하면 해당기업의 입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대학교마다 인턴 모집 행사에는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성황이었다.

그렇던 인턴제도가 경제위기를 맞아 청년실업을 구제하고 일자리 창출의 한 방법으로 정부기관, 공기업 등으로 확대되면서 변질 위기를 맞고 있다.

인턴제가 경력을 쌓거나 가고 싶은 직장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행해지기 보다 청년 실업 극복을 위한 ‘구제’ 정책의 차원으로 인식되다 보니 인턴을 10개월 머물다 갈 ‘비정규직’으로 치부하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널리 퍼진 것이다.


행정인턴 온라인 카페에는 회식자리의 성희롱, 은행 심부름 등 사적인 심부름, 과중한 업무 부과, 행정인턴 자체를 경시하는 발언 등 부당한 대우들이 가득했다.

인턴을 통해 일자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경력을 쌓아 새로운 자리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야 하는데 오히려 인턴제로 직장 생활에 흥미를 잃어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행정인턴은 “계약을 해지하는 순간 우리는 일반 민원인으로 돌아가는 데 공무원들이 이 점을 잊고 잊는 것 같다”며 “행정인턴에 관한 보도가 정부정책에 대한 비난일색이다 보니 편파적으로 흐르고 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물론 인턴을 하면서 처음 겪는 직장생활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후회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희망의 목소리를 잊지 않는 모습도 있었다.

카페의 또 다른 회원은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취직이 쉽지 않지만 우린 적어도 10개월 동안은 100만원 벌잖아요. 쉽게 버는 돈도 아니고. 긍정적으로 힘내자고요”라면서 다른 인턴들에게 파이팅을 당부했다.



◇인턴광풍, 외려 사회적 비용 증가=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인턴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진 이유로 대량 물량공세처럼 몇천명을 고용했다는식의 접근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인턴제는 인턴을 수요로 하는 조직에 적절한 인적자원이 공급됐을 때 ‘윈윈’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지금처럼 인턴 광풍시대에서는 ‘윈윈’효과가 조직이나 개인 모두에게서 발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구민교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턴기간 동안 직무 적무성을 제대로 기르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턱대고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대규모로 인턴을 뽑으면 오히려 인사적체로 사회적 비용만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이어 “당장 눈에 보이는 형식적 일자리인 ‘인턴’을 늘리는데 집착하기 보다 경기침체기 청년들이 자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학자금 장기저리 융자 등의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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