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사장, "위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09.02.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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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위기관리 철저.."올해 ROE 유지 총력"

정태영 사장, "위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위기요? 글쎄요…. 크고 작은 위기는 늘 존재하는 법이죠."

2003년 카드대란의 위기 속에서 회사를 구해낸 자신감 때문일까.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동 현대카드 본사에서 만난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사진)은 카드대란 이후 가장 혹독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09년에 대한 각오를 무심한 듯 이렇게 풀어냈다.

현대카드 최고경영자(CEO)로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위기 속에서 보냈다. 위기에 대해 내성이 생길 법도 하다. 그에게 위기는 더 이상 '변수'가 아닌 '상수'인 듯 했다.



◇"위기는 늘 존재한다"=정 사장은 지난 2003년 10월 '카드대란'이라는 최악의 위기 속에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직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영업손실 규모는 약 8300억원, 카드 연체율은 10%에 육박했다. 게다가 미수금은 1조원을 넘어 회사가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면서 그는 '위기관리'에 과도할 만큼 집착하게 된다. 현대카드는 금융당국에서 충당금 적립 기준을 강화하면서 제시한 시한보다 1년 빠른 지난 2007년 충당금 규모를 대폭 늘렸다. 이렇게 적립한 현대카드의 충당금 규모는 금융감독원 기준의 150%에 이른다. 연체율은 카드업계 평균(3.43%)보다 훨씬 낮은 0.73%에 불과하다.



◇카드업계 최초 마케팅 개념 도입=정 사장에게 '위기관리'란 단순히 충당금을 많이 쌓고, 연체율을 줄이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공격적인 마케팅 또한 그에겐 또 다른 의미의 위기관리다.

경쟁사들이 연회비를 면제해주고 사용한도를 늘려주는 전략으로 고객 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정 사장은 고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택했다.

"고객들이 정말 연회비와 사용한도, 포인트 적립 등을 일일이 따져보면서 카드를 선택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고객들은 의외의 요소에 반응을 해요. 예를 들면 예쁜 카드 같은 것 말이지요."


정 사장에게 카드는 단순한 결제수단이 아니다. 그는 카드를 '편의 용품'(convenient product)이라고 정의한다. 정 사장은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업계 최초로 과감한 마케팅에 나섰다.

정태영 사장, "위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우선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카드 디자인 개발을 의뢰, 현재 현대카드의 모든 카드 디자인에 적용되는 템플릿을 만들어냈다. 또한 마리아 샤라포바, 비욘세, 빌리 조엘, 플라시도 도밍고를 동원해 마케팅에 활용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손잡고 신예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이렇게 딱딱하고 네모난 플라스틱에 불과했던 카드에 감성을 불어넣었다. 이후 현대카드는 '세련되고 스타일이 있는 카드'라는 인식이 고객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5년 만에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이 1.8%에서 15%로 급등하면서 업계 2위를 다투게 됐습니다.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는 얘기지요."

◇"ROE가 높아야 행복하다"=올 한해 정 사장의 관심은 자기자본이익률(ROE) 유지에 쏠려있다. 그는 각종 경영지표 중 ROE만큼 회사의 수익창출능력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현대카드의 ROE는 25% 수준으로 증권사 평균치(약 5~6%)는 물론 시중은행 평균치(약 15%) 보다도 월등히 높았다. 자산규모(23조)는 작지만 수익성 만큼은 국내 금융기관 중 최고다.



"현대카드의 2대주주인 제너럴일렉트릭(GE)은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의 ROE가 20% 이하로 내려가면 손을 털고 떠납니다. 국제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상당수 금융기관들은 평균 이하의 ROE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얼마 전 스페인 최대은행인 산탄테르 은행을 방문했는데 이 회사의 ROE는 30%를 넘더군요. 우리는 이 같은 국제적 수준의 ROE를 추구할 겁니다."

◇"여신협회장? 아직 이르다"=그는 최근 공석이 된 여신금융협회장의 차기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올 한해 여신업계가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위기 극복에 능숙한 정 사장이 나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는 업계의 이 같은 기대가 상당히 부담스런 표정이다.

그는 협회장직에 대해 "업계에는 나보다 훌륭한 선배들이 많다"며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비자카드의 일방적인 수수료율 인상 조치에도 그는 입을 열었다. 비자카드의 조치에 일부 카드사가 연일 격양된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대답은 차분하고 담담했다.

"비자코리아의 매출 규모는 전 세계 비자카드 중 최고 수준이지만, 수익성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수료율 인상 결정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과정'에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수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어야 하는데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다는게 문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올해 현대카드의 경영화두에 대해 입을 뗐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위기 관리가 강조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그간 위기가 닥칠 것을 대비해 착실히 준비해 왔습니다. '위기관리'는 있을지언정 '위기극복'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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