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강만수, 남긴 발자취는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09.01.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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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일등공신
- 환율, 종부세 관련 비판도 많아
-"아쉬움 남겠지만 후회없을 것"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19 개각'으로 경제부처 수장 자리를 떠난다. 임기 만 1년을 채우진 못했지만 소신을 가지고 원칙대로 일한 만큼 후회는 없을 것이란 평이 많다.

강 장관은 '7.4.7'(연 7% 경제성장, 10년내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 공약의 입안자이자 'MB(이명박)노믹스'를 상징하는 인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지난해 2월29일 금의환향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위기의 주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옛 재정경제원 차관에서 물러난지 10년만의 복귀였다.

관심이 집중된 만큼이나 '올드보이의 귀환'이니 '킹만수'니 하는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랐다. 소망교회를 매개로 인연을 맺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탓도 있지만 워낙 소신이 강하고 고집이 센 성격도 일조했다.



임기 내내 강 장관을 괴롭혔던 '고환율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다. 강 장관은 "환율 상승은 자연스런 현상",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 추이를 감안할 때 어느 길로 가야할지는 자명한 일" 이라는 발언으로 환율상승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마침 그 때가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부담이 심했던 때라 비판은 더욱 거셌다.

은행권에 대해서도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 상품 판매와 관련, 'S기꾼'(Speculation, 투기꾼)'이라는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해가며 질책해 시장과 불화를 자초했다. 키코 상품의 문제점을 선제적으로 정확히 짚어낸 것은 옳았지만 발언의 형식이 문제였던 것.

이는 강 장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환율과 물가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비등해졌고 결국 지난해 7월에 '분신'으로 불렸던 최중경 전 재정부 차관의 경질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강 장관은 자리를 지켜 이 대통령의 총애가 확인됐지만 '대리경질' 논란에 휩싸이며 리더십에는 큰 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지난해 하반기에 오히려 더 정력적으로 움직이며 한나라당의 오랜 공약이었던 감세 정책을 완성했다. 특히 세제개편 작업을 앞두고 세제실장을 교체하면서까지 종합부동산세 개정 등 평소 지론인 '감세'를 밀어붙인데 대해 여당 평가는 높았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도 빠뜨릴 수 없는 '업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을 때 강 장관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주도하며 환율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은 "강 장관이 미국에 가서 재무장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과 얘기를 잘한 것 같다"고 추켜세웠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계기로 금융시장은 점차 안정을 찾았고 중국과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확대라는 성과도 낳았다.

강 장관이 원칙을 고집스럽게 밀고나간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한국이 선전할 수 있었다는 후한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재정부 관계자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강 전 장관이) 하고자 했던 일은 대부분 성사시켰다"며 "대내외 여건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겠지만 후회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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