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를 잊게 하는 이들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12.3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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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 2008년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단연 김연아였다. 성탄절 다음날 조간 신문도 그녀의 사진으로 채워졌다. 전날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자선 아이스쇼의 한 장면이었다.

빨간 산타 복장과 그녀 특유의 눈웃음은 한 겨울 추위를 녹였다. 자선쇼답게 입장 수익금 전액(1억4363만7000원)은 소아암 환자를 위해 쓰였다.



하지만 실제 '자선'은 일부 환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관객과 시청자, 온국민이 느낀 따뜻함은 계산 범위를 넘어섰다. 그녀는 웃으며 희망을 보여줬다. 그녀의 열정이 발현됐다.

5차례 연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가수 원더걸스의 '노바디'에 맞춘 공연으로 관객과 호흡했다. 국민은 그 노력에 박수를 보냈고 함께 즐거워했다. 잠시나마 현실의 어려움은 잊었다.



# '김연아 효과'는 이미 알려져 있다. 그의 몸값만 해도 수 십 억원에 달한다. 그녀를 후원하는 메인 스폰서는 KB국민은행, 나이키, 현대자동차 등 세군데다. 광고계약을 맺은 업체도 여럿이다. 이들 업체는 '김연아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유무형의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당장 음반업계만 봐도 그렇다. 김연아의 경기출전 배경음악과 그녀가 좋아하는 클래식 곡을 모아 제작한 클래식 앨범 '페어리 온 더 아이스(Fairy On the Ice)'. 발매 2주만에 한정분 1만장이 다 팔렸다. 이른바 '대박'이 났다.

김연아가 갈라쇼 때 사용한 가요는 곧 앨범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다. 지난 성탄절 공연 때 그녀가 직접 부른 태연의 '들리나요'는 곧 검색 순위 상위에 올랐다. 동네 스케이트장에 고객이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김연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8년 희망과 꿈을 준 고마운 이들이 많다. '마린보이' 박태환을 비롯 장미란, 골프여제 신지애, 기부천사 김장훈, 문근영…. 이들이 있었기에 우린 행복했다.

'박태환 효과'는 김연아 효과 못지않게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김장훈 효과, 문근영 효과는 추운 겨울 온풍을 불러왔다. 신지애는 1998년 외환위기 속 박세리가 그랬듯 경제 침체로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힘을 줬다.

어린 선수들은 경제 위기, 실업, 고용 불안 등 공포가 엄습한 때 위로를, 희망을, 웃음을, 감동을 선사했다. 이제 갓 스물도 안 된 나이에 말이다.

# 2008년 세밑, 눈을 돌려 바라보는 여의도 국회 의사당은 여전히 전쟁터다. 본회의장은 '점거'됐다. 지키려는 자와 되찾으려는 자 간의 다툼이 흡사 '공성전'을 연상케 한다. '정치'는 없고 저잣거리 패거리들의 '싸움'만 있다.

김연아를 잊게 하는 이들


전기톱, 해머, 쇠사슬 등 온갖 무기가 총동원됐다. 그나마 '여의도 효과'가 있다면 망치, 쇠사슬의 판매량이 늘겠지만 그마저도 없다. 김연아, 박태환 등이 전해준 웃음과 감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곳으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이다.

국회의사당에 있는 이들에게 '김연아 효과'를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다. 다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작은 소망 하나만 얘기하고 싶다. 감동을 기대하진 않을테니 제발 국민에게서 김연아의 웃음, 신지애의 감동을 느낄 기회마저 빼앗지 말기를….

그렇지 않으면 '김연아 스케이트 타게 국회의사당에 물을 채워 얼리자'는 서명 운동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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