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8.09.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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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세상]불안은 집중력을 높여준다

불경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대해


얼마 전 추석 인사로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들 중 2개가 반송되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이유인즉슨, 두 회사 모두 사업장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이 불경기는 언제 끝나는 것일까.

서신을 전하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 중 한 분은 얼마 전 통화에서 요즘 꼭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다고 토로해왔던 바 있어 반송된 우편이 더더욱 마음에 걸렸다.



불경기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여러가지다. 어떤 사람은 허리띠부터 졸라매고는 가늘고 길게 갈 채비를 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잘 넘겨보자면서 파이팅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한다.

어떤 태도가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짙디 짙은 안개 속에는 사실 아무런 길도 없다. 길은 커녕 한 발 앞이 벼랑인지, 늪인지, 아니면 가시밭인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도대체 방법을 모르겠다는 먹먹함. 이 안에 너무 오래 갇혀 있다 보면, 공황과 피로감에 지쳐가게 된다. 이 지루하리만치 텁텁한 안개 속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데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그는 길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나 보다.

그 길 끝에 무언가를 꿀 수 있는가 보다. 그런 힘이 그에게 보이지 않는 길을 놓아주고, 있지도 않는 이정표를 만들어 길 끝으로 그를 안내한다.


그러나 그런 걸음들은 아마도, 많은 오류들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염려한 대로, 벼랑으로 떨어지고, 가시밭에 찔리고,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에게도 앞은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상하건대, 그는 처음에는 많은 오류를 범하다가, 점차 벼랑으로 덜 떨어지고, 가시밭에서 찔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늪지를 돌아나오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가 기대했던 것 보다는 훨씬 오래 뒤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빠른 시각에 그 안개 속을 헤집고 나와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우울함과 피로와 절망이 파고들지 못할 만큼의 놀라운 집중력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기라는 것이 깃들지 않는 한, 불안감은 우리에게 끝없이 집중력을 이끌어낼 에너지가 되어 준다.

피터 드러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큼 우리의 집중력을 높이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니, 더 정확히 그는, ‘내일 목이 매달릴지도 모르는 남자’의 마음만큼 높은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없다고 썼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안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집중력이나 긴장감 속에 오래 머무는 것을 더 견디지 못한다.

어느 경우에나 지쳤다고 말하며 포기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이런 순간에는 강한 의지라는 것이 도대체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사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끝없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수퍼 초강력 의지의 인간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강한 의지 이전에, 꿈꿀 수 있는 용기이다.

안개 속을 단단히 걸어가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길을 생생히 상상해낼 수 있는 마음, 영감, 그리고 용기가 있다. ‘마음과 영감을 따를 수 있는 용기’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게 해주고, 두려움을 콘트롤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처럼 놀라운 사람의 이야기는 실화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애플(Apple)사를 이끄는 스티브잡스는 바로 그렇게 했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애플사를 창립, 컴퓨터가 오늘날 같은 윈도우체제를 마련하기 이전에, 맥킨토시라는 최초의 윈도우 모태형 시스템의 컴퓨터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애플사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자신이 세운 회사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당시 모든 마케팅 저서들은, 실패자의 사례로 빠지지 않고 스티브잡스의 오만한 독주를 이야기했고, 그의 인생은 거기서 멈춘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 뒤, 그가 만든 세계 최초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에 열광하게 된다. 그는 다시 일어섰고, 경영난에 허덕이던 애플의 구세주 같은 CEO로 다시 재영입된다.

그는 오랜 안개 속에서도 픽사와 넥스트사를 설립했고, 전혀 다른 분야였지만 꿈꿀 수 있는 마음과 영감을 잃지 않았다.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라는 말은 얼마 전 스티브잡스가 스탠포드에서 했던 졸업식 축사연설에서 젊은이들에게 던진 화두 중 하나다.

스티브잡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와본 경우입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서 세 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딱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얘기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중략)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점들을 연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 과거를 바라보면서만 점들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과거의 점들이 당신의 미래의 점들로 어느 정도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에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본능을 믿는 것이어도 좋고, 운명을 믿거나 아니면 숙명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제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그의 연설에는 진하게 살아온 삶이 전해오는 가슴찡한 울림이 있었다. 그는 날 때부터 버려졌던 입양아였고, 한 때 사회의 공공연한 실패자였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싶을 만큼 초라하게 낙인 찍혔던 시절조차도, 그는 매우 소중하고 감사한 기억들로 회고한다.

그는 평생에 있어, 그 시절만큼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들에게 언제나 ‘배고픔’ 속에 머물러 있으라고 충고한다. 때로 시련은 우리의 창의력과 집중력, 잠재력을 상상도 못할 만큼 풍부히 이끌어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누구도 시련이 닥쳤을 때, 이것이 그런 놀라운 기회임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먼훗날 돌아보았을 때는 그런 시련이 자신을 바꾸어 놓았음에 감사하게 된다.

아울러 그는 ‘미련함’속에 머물러 있을 것을 함께 요구했다. 실제로 안개 속을 빠져 나와 본 그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정, 즉, 벼랑에서 떨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늪에 빠지는 경험 속에서도 또 일어나 걷기 위해선 미련함의 미덕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불행한 것은 안개 속이 갇혔다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의 안개는, 우리가 최상의 변화를 이끌어낼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을 비로소 변화시킬 절대적 동인일 수도 있다.

스티브잡스 또한 회사에서 퇴직한 뒤 한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그가 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점이었다고 한다.

강산에의 노래 ‘흐르는 강물을 거꾸러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에는 그런 구절이 있다.

만약에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길 끝에 가보니)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이처럼 오랜 불경기는 어떤 면에선 소중한 모멘텀이다. 지금 걸어가 수 있는 자신의 길, 그것이 미래의 어떤 점으로 연결되리란 믿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물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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