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게' 살면 얻어지는 것들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8.04.2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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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세상]작은 일부터 신뢰를 쌓아야

'미련하게' 살면 얻어지는 것들


요즘 신입사원 면접을 보느라 바빴다.

나름대로 패션 트렌드 전문가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역시 신입다운 신선하고 어설픈 모습에 웃음이 나곤 한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신입사원들을 '프레쉬맨(fresh men)'이라 부르나 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무언가 면접의 양상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는 그저 단정한 차림들로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우리 계통이 패션 쪽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성들 비중이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머리에 고대를 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진 것이다.



조금 황당한 것은, 우리 회사에 대해 물어보면 별로 맞지 않는 소리를 상당히 자신있게 한다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알고 왔습니다!'라는 당찬 어조 속에 담긴 것은, 우리 회사의 실상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다. 어째서 간단한 인터넷 검색도 제대로 하고 오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왜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자신이 넘치는 것일까.

어느 날 부터인가 '실력이 첫째다' 라는 인식이 '재색을 겸비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 인식은 다시 '미모부터 갖추어야한다' 것으로 완전히 본말이 전도되어 버린 것 같다. 엉성한 대답을 하고 있는 사람의 미모란 자칫 더 속비어 보일 수 있음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면접이란 으레 그렇듯이 상대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예상치 못한 상황들은 상대가 꾸미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는 좋은 찬스이기 때문에, 면접관들은 종종 지원자들의 됨됨이를 알아보려 미묘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 순간에 이제 갓 사회에 손을 내미는 신입들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 유려한 언변이나 능수능란한 답변들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진실로 기대하는 것은 그저 젊은이다운 순수다. 곤란한 질문에 곤란해 할 줄 알고, 준비치 못한 답변에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모습이다.

몇 달 전 ㈜보끄레머천다이징의 이만중 회장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 회장님은 업계에서 아주 독특한 명망을 얻고 있는 분이다. 성공적인 패션기업운영을 하는 CEO로서, 화려한 언론플레이에선 좀처럼 이름을 찾기 어려우나, 사회환원이나 우직한 투자와 같은 전통적인 가치관으로 조용하고 두터운 신임을 얻고 계시다.


그 강의에서 가장 가슴에 꽂힌 말은 바로 '미련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미련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신뢰'라면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미련함이라는 것이 강의의 한 골자였다. 바로 그렇게 평생을 살아 온 노장(老長)의 내공(內功)이었기에 그 말은 무엇보다 참석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가 미련하고 우직하게 살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렇게 살다가는 뒤쳐질지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해서야 어느 세월에 성공하겠느냐는 생각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효과적으로', '전략적으로' 살기를 꿈꾼다.
그러나 '우직함'이나 '미련함'이라는 말은, 효과적이지 않다거나 전략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말의 본질적 개념은 그가 '작은 일'들을 충실히 처리할 수 있는가를 의미한다. 피터 드러커는 그런 말을 했다. "작은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큰 일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작은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작은 일이 아닌 큰 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겉멋을 충족시켜 줄 일이란 세상에 별반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일을 처리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은 '아이디어'나 '의견'을 멋지게 제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인정받기엔 너무나 사소한 것이다. 자신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누군가 그것을 세부화하고 작은 일까지 알아서 기획, 진행하여 착실히 성공시킨 뒤, '당신의 아이디어는 참으로 좋았소'라고 그에게 성공을 돌려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충실하고 우직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인스피레이션으로 작용할 뿐이다.

남의 성공에 대해 뒷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원래 저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그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중시하는 것은 '누가 생각해냈느냐'가 아니라 '누가 수행하였는가' 이다. 왜냐하면 생각해내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지만 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미련이 주는 최고의 선물은 신뢰라는 것은 정말이지 가장 아름다운 말 중 하나다. 그런 신뢰를 받는다는 것, 그런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명함 주고 받은 사이가 아닌, 진실된 인맥을 형성하게 하는 유일한 접착제이다.

사회에 발을 내딛으려는 초년병들에게조차 순수한 미련함을 기대할 수 없다면 기업의 미래란 있을 수 없다. 조금 더 원칙적이고 고루한 탄탄함을 갖춘 사람들과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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