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겁니까"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2008.08.0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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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으로 본 세상]경영자는 세련된 속물이 되선 안 돼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겁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유명한 것'을 좋아한다. 유명한 것을 이야기하는 문화에 동참하고, 그것을 나누고, 무언가 유명한 것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가고 있을 때 안정감과 행복감은 훨씬 쉽게 찾아온다.

이런 흐름을 우리는 '대세를 추종'하는 것이라 부른다. 유명한 것들이 있는 세계는 세상에서 가장 따사로운 양지다. 모름지기 대세에 서 있다는 것은, 대세와 한 편이라는 것은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이며 안락한 일인가.



유명한 학교를 나왔고,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유명한 브랜드를 입고, 유명한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정말이지 그의 삶은 지금 현재로선 남부러울 것 없는 기반을 갖춘 것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유명한 것'만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은 유명하지 않은 것들은 수상쩍거나 졸속한 것, 비천한 것이라 여긴다.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못들어 본 학교를 나온 사람이나 못들어 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무언가 급이 낮아 보인다. 일류 브랜드를 입지 않은 사람은 안목 없어 보이고 짝퉁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천박해 보인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속물'이라 부른다. 속물의 사전적 정의는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교양이나 식견이라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이 이른바 대세에 보내는 그지없는 신뢰는 합리적 판단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군중심리에서 비롯된다. 논리학에서 심리학적 오류라 부르는 몇 가지, 부적절한 권위에의 호소라든가 대중심리에의 호소 같은 것들이 이들에겐 제대로 먹혀든다.

식견이라는 것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데, 스스로 판단하기엔 너무 식견이 부족하기 때문에 권위에 휘둘리고, 타인의 평판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거나 추진할 수 없다. 아마 어느 유명한 기업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한 다음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따라할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스스로 최초가 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시도라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설픈 시행착오를 우리에게 요구하는가. 처음 시도되는 모든 일이란, 아무리 열심히 연구된다 할 지라도 어설프거나 미숙할 위험을 언제나 동반한다. 전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100%의 리스크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기업은 세련되고자 하는 목표를 지닌 미적집합체가 아니라, 수익을 내고자 하는 경제적 집단이므로, 당연히 최초사업자가 지닐 수 있는 시장의 선점과 재편이라는 막대한 기회를 거머쥐고 싶어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리가 경영자를 지칭할 때 쓰는 'entrepreneur'라는 단어는 이미 그 자체에 'risk-lover', 'risk-taker'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진정한 경영자는 혁신을 위해 리크를 기꺼이 감내한다. 다시 말해 리스크러버가 아니라면 그는 엔터프러너라 볼 수도 없다.

이들에게 리스크는 '위험하니 피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위험하니 관리해야 할 무엇'이 된다. 리스크가 두려워 혁신을 피한다는 것은 애초에 entrepreneur의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리스크러버의 모습은 종종 어설프게 비추어진다. 회의나 여타 발표석상에서, 이들이 내는 놀라운 사업 아이디어들은 속물들에게 무참히 짓밟힌다. 더 딱한 것은 속물들은 리스크 관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바로 그 자리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떡할 거냐'에 대한 대답을 조급히 제안자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그 문제는 즉석에서 답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어떤 구상이 충분히 가치있어 보인다면, 어떤 리스크가 있고,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의 문제는, 그 구상을 어떻게 구현해 갈 것인가 만큼이나 충실한 기간을 두고 연구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먼저 사업안에 대한 연구 가치들을 판단하여 동조해주어야 리스크건 실행이건 연구하여 실질적인 추진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인데, 한 단계 짚어주기는커녕 마치 완성된 아이디어를 비판하듯 추궁이 이어지므로, 회의는 공황에 빠져버린다.

한 기업이 추진할 만한 사업 구성안이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농익기 어려운 법이다. 그에게 구성안을 구체화하도록 팀을 짜주어도 모자랄 판에, 한 사람이 한 번에 사업안을 완벽하게 제안하지 않았다고 하여 거부해 버린다면, 도대체 기업은 어느 인재로부터 어떤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요컨대 경영자는 세련되고 싶다는 속물근성을 버려야 한다. 순수한 엔터프러너로 돌아가 시장과 기회, 리스크를 균형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어설플 수 있지만 기회가 큰 사업'들에게 '벤처'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인정하여 왔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안정된 사업과 벤쳐 사업간의 적절한 포트폴리오적 배분이 기업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함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어떤 이들은 대화가 잘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한 줄의 글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한은 모든 것이 정체할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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