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의료법인? 美쇠고기처럼 하지 말길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이학렬 기자 2008.05.16 08:52
글자크기

[말랑한 경제-카스테라]

 미국의 가난한 노동자 릭은 나무를 자르던 도중 가운데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 끝이 잘렸다.

릭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가운데 손가락 봉합에 6만달러, 넷째 손가락 봉합에 1만2000달러가 든다고 했다. 릭은 결국 돈 때문에 가운데 손가락을 포기했다.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과 '화씨 9.11'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의 첫 장면이다. '식코'는 병자나 환자를 뜻하는 미국의 속어.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3일 "병원을 영리법인화하면 영화 '식코'처럼 되는 것 아니겠느냐"며 "기획재정부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는데 절대로 못한다"고 말하며 지목한 영화다.



재정부가 지난 11일 서비스산업 육성 차원에서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한 반박이었다.
 
김 장관의 우려처럼 병원을 영리법인화한다고 영화 '식코'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의료보험이 공보험이 아니라 민영이다. 돈이 없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릭 같은 사람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있고 모든 병원은 '당연지정제'에 따라 모든 환자들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김 장관이 당시 발언 때문에 곤욕을 겪은 것도 미국과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차이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김 장관의 일시적인 착각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이를 김 장관의 단순한 말실수라며 덮고 넘어가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병원의 영리의료법인화와 영화 '식코'가 완전히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이 영리법인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의료법인의 투자지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의료법인이 돈을 벌면 이를 투자지분대로 나눌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또 지금은 의사(의료인), 의료법인(재단법인으로 제한), 지방자치단체만 의료법인을 출자할 수 있지만 병원이 영리법인화되면 의사가 아닌 일반인도 병원에 출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병원이 영리법인화되면 주주들의 압력을 받아 수익성 높은 서비스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연스레 저소득층에 대한 수익성 낮은 진료는 기피할 공산이 크다.

또 의료산업에 들어온 외부자본을 중심으로 당연지정제에 대한 폐지 압력이 거세질 수도 있다. 영리의료법인 허용이 곧장 '식코'와 같은 상황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지만 '식코'로 향하는 첫걸음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재정부가 영리의료법인의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병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 의료산업이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을 잊고 가기엔 뭔가 꺼림칙하다. 정부가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