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사 상부상조 신모델 제시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2008.05.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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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성 평가 1세대로 증시에 입성한 크리스탈 (2,250원 ▲20 +0.90%)이 대형 제약사와의 전략적 제휴에 성공했다. 이번 제휴는 기존 제약사-바이오벤처간 제휴와는 좀 다른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엉덩이가 무거운 제약사가 선뜻 지갑을 열었고, 바이오벤처는 줄 것은 주면서도 실리를 챙겼다.

향후 다른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벤처간 비슷한 사례의 제휴 가능성을 열었다는 기대도 높다.



대규모 투자에 경영권도 보장

지난달 30일 크리스탈 (2,250원 ▲20 +0.90%)은 국내 2위 제약사인 한미약품 (33,800원 ▲150 +0.45%)과 전략적 제휴 계약을 맺고 31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 한미약품은 크리스탈의 신약후보물질을 먼저 고를 수 있는 권리(우선협상권)를 갖고, 대신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게 됐다.



양사의 이번 전략적 제휴는 국내 바이오벤처와 제약사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그동안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KT&G (107,100원 ▲400 +0.37%), SK케미칼 (35,150원 ▲50 +0.14%) 등 대기업이 바이오벤처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유한양행 (145,400원 ▲19,900 +15.86%)이나 대웅제약 (143,600원 ▲400 +0.28%) 등 국내 제약사들도 바이오벤처와 공동연구에 나선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소규모 지분투자에 그치거나, 아니면 연구개발비 일부를 대주고 공동으로 바이오 기술을 이용한 신소재나 신약을 개발하는 형태가 전부였다.

때문에 바이오업계에서는 제약사가 바이오산업의 특성인 리스크는 짊어지지 않으려 하면서 열매의 단맛만 맛보려 한다는 불만이 높았다. 해외에서 신약을 들여오는 데만 익숙해 있어 '외국것만 좋아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한미약품과 크리스탈간 제휴는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는 대규모 투자라는 데서 눈길을 끈다. 한미약품은 크리스탈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156억원을 투자해 12.8%의 지분을 확보키로 했다. 이에더해 한미약품은 크리스탈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150억원에 매입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이 크리스탈 1대 주주인 조중명 대표에 이어 2대주주로 부상하지만 독립적인 경영권은 보장받았다.



제약사는 바이오 R&D 적극 활용

뿐만이 아니다. 이번 제휴는 한가지 물질이나 기술에 대해 공동연구를 실시하던 기존 제약사-바이오벤처간 제휴간 방식에 비해 범위가 한층 늘어났다.

한미약품은 크리스탈이 전임상 혹은 임상중인 3개 신약후보물질을 포함, 크리스탈의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 전체을 대상으로 아시아 지역 판권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확보했다. 이 말은 한미약품이 크리스탈의 신약후보물질을 리뷰한 뒤, 마음에 드는 물질에 대해 아시아지역에서의 판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한미약품은 한가지 물질에 집중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크리스탈의 다양한 후보물질 중에서 한미약품의 전략에 맞으면서도 '성공확률이 높아보이는' 것을 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량신약' 개발사로 폄하되던 한미약품이 크리스탈 후보물질을 적극적으로 활용, 최고 약점인 혁신 신약개발 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약제비 적정화방안 등으로 제약사들에 신약개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리스크도 크고 개발기간도 긴 신약개발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능력있는 바이오벤처와의 협력을 통해 신약개발을 하는 편이 유리했을 것이란 평이다.



한 바이오벤처 관계자는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다고 당장 파이프라인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며 "화이자나 머크 등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바이오기업을 기웃거리는 것도 같은 돈으로 위험은 줄이면서 쓸만한 후보물질을 고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는 R&D투자..협상력 상승

한편 크리스탈은 잠재적 대박신약에 대한 독점권을 일부 포기한 대신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받아 보다 자유롭게 R&D를 할 수 있게 됐다. 국내 2위 제약사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상업화시에도 협상력과 영업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미약품을 등에 업고 아시아시장 진출에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또 더 큰 시장인 미국과 유럽 시장 등의 판권은 여전히 크리스탈이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약할 수 있는 도태를 마련한 셈이다.

크리스탈이 특정 물질에 대한 것이 아닌 광범위한 우선협상권을 준 것이라, 한미약품이 관심이 없는 신약후보물질에 대해서는 또다른 글로벌 제약사와 협상할 수 있는 여지 역시 남겼다.

권재현 대우증권 연구원은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기업들의 연구단계가 진척돼 라이선싱아웃(기술수출) 기회가 높아지고 있다"며 "보다 다양한 형태의 협력들이 이어져 국내 신약개발 활성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질환표적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해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현재 7개의 R&D 파이프 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모레퍼시픽, 유유 등과도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중 퇴행성관절염치료제가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임상 2상과 1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당뇨병치료제와 저산소증치료제, 신개념 항생제는 전임상 단계다. 저산소증치료제의 경우, 미국의 바이오캐피탈인 프로퀘스트와 공동으로 '발견'사를 설립, 투자를 받고 연구를 하기로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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