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기를 갖지 않은 직장인 김모 씨는 주말마다 부인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자동차 운전을 좋아하는 김씨는 조금이라도 더 스포츠감을 높이기 위해 현대자동차의 스포츠 쿠페인 투스카니 GL(2.0 VVT엔진)을 구입했다. 여기에 운전의 묘미를 즐기기 위해 수동변속기를 선택했다.
투스카니 GL 자동변속기의 공인연비는 리터 당 10.4km.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9km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수동변속기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11.6km, 실질 연비는 10.3km로 자동변속기 차량보다 10% 이상 높은 연비를 자랑한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에쿠스, 그랜저 등 대형세단에는 수동변속기 장착 차량이 없으며 소나타도 지난해 판매된 차량 중 99.1%가 자동변속기 차량이다. 상대적으로 소형인 클릭(수동변속기 장착 차량 13.4%), 베르나(8.2%), 아반테(4%), i30(5%) 등도 자동변속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쌍용차 역시 지난해 전체 판매차량 중 수동변속기 장착차량 비중은 5% 정도에 불과한 상태다.
이 같은 현상은 수입차업체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경우 수동변속기 차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막상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수입차를 판매하는 곳은 거의 없다. 푸조의 경우도 207시리즈에 수동변속기를 장착해 판매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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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차량 수동 비중 높아
하지만 모든 종류의 차량이 이처럼 자동변속기 장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현대차 투스카니의 경우 지난해 자동변속기가 장착돼 판매된 차량은 총 1352대로 53.3%에 불과하다. 절반 정도는 수동변속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연비적인 측면보다 자동변속기로는 느낄 수 없는 ‘손 맛’을 위해 수동변속기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판매 차량 중 유일하게 수동변속기 장착률이 50%에 육박하는 현대차 투스카니
수입차업체 중에서는 스포츠카를 판매하는 포르쉐에서 현재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을 판매하고 있다. 박스터, 카이맨, 911 등 스포츠카 라인업에서 수동변속기가 장착된 차량이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판매대수 중 수동변속기 비중은 9.1% 정도다.
포르쉐 911 터보- 국내에 판매되고 수입차 중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을 판매하는 곳은 포르쉐가 유일하다
◆잘못된 운전면허 제도가 수동 보급률 낮춰
이처럼 곧 운전의 매력과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수동변속기 비중이 늘지 않는 이유는 ‘편의성’이 차량 구입 시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동변속기 모델을 운전하려면 클러치를 밟았다 뗐다를 반복하고 기어를 수시로 바꿔야 하는 불편으로 인해 자동변속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운전면허제도의 문제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2종 오토 면허가 생기면서 운전면허를 빨리 따고 싶다는 욕심에 너도나도 오토면허를 따면서 수동변속기 차량 운전을 못하게 됐다는 점이 수동변속기 차량의 보급률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최광년 회장은 “휘발유가 한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국민들로 하여금 연비가 낮은 오토를 몰게끔 내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최 회장은 운전면허제도의 개선과 함께 수동 차량의 연비, 성능의 우수성 등을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오토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유럽의 경우도 교통체증이 엄청나지만 수동 차량이 많다”며 “말로만 기름을 아끼자고 떠들 것이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기름 절약을 위한 일반인들의 인식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내 자동차업계의 연구개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유럽 자동차업계는 메이커들의 요구로 변속기 제조업체가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변속기업체의 제품을 그냥 사다가 장착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메이커들이 수익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수동에 버금가는 자동변속기 개발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