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교육정책 '컨트롤' 기능 상실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8.03.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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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교육청ㆍ지자체, 대선공약 각자 알아서 진행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아 피기도 전에 시든 꽃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새 정부가 ‘자율, 다양, 분권’이라는 새로운 교육철학을 실현하려면 정책조율 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제대로 역할을 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 잇따른 정책 혼선 =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2일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비위 교직원의 명단을 공개키로 했다가 불과 4시간 만에 철회했다. 법적 근거가 미비한 데다 이중처벌, 인권침해 논란까지 제기됐기 때문.

18일 서울시의회의 본회의 표결을 앞둔 ‘학원 24시간 교습 허용’ 조례안 개정도 여론 악화에 밀려 재심의 절차를 거치는 등 혼선을 겪고 있다. 교육과기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 우려를 표명했지만 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는 개정안을 결국 원안대로 통과시켜 교원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또 다시 불거진 시험문제 유출 의혹도 교육당국으로서는 부담이다. 새 정부의 기초학력진단평가 및 학업성취도 평가 강화 방침에 따라 중학교 일제고사가 10년만에 부활하는 등 전국적으로 학력평가 열풍이 불고 있지만,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수리영역 문제유출 의혹이 불거지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한 제도보완이 우선이라는 여론이 높아진 것.

정권교체 초기의 어수선함과 맞물려 고3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답답함도 지속되는 모습이다. 대교협 등 대학협의체는 교육부로부터 대학입시 업무를 넘겨받았지만 총선 영향으로 관련 법 개정을 기대하기 어려워 업무권한과 기능을 어디까지 설정할 지 난감해 하고 있다.

◇ ‘대통령 공약’ 각자 알아서 해석 = 최근 불거진 교육계 논란들은 대부분 새 정부 교육개혁 정책과 관련이 깊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평준화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자율, 다양, 분권을 새로운 교육철학으로 제시, 교육부 등 중앙에 집중된 기능과 권한을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민간기구 등으로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는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면밀히 분석, 비위 교직원 명단 공개와 학원 24시간 운영 등 나름의 세부 시행대책들을 추진하면서 새 정부의 교육개혁에 적극 호응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나 교육계에 그다지 익숙치 않은 ‘분권’과 ‘자율’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갖가지 혼선이 빚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조율 기능은 상실됐다는 비판이 높다. ‘학원 24시간 교습’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학생들이 학원에 매달릴 경우 공교육을 망가뜨릴 수 있다”며 ‘학원 24시간 교습’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제안한 것은 공교육을 진작시키고 학교에 자율화를 주자는 것이지 학원에 자율화를 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서울시의회가 대통령의 공약을 잘못 해석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새 정부의 규제철폐 방침에 따라 조례안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던 정연희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은 오히려 대통령과 교육과기부 장관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정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규제철폐 순기능도 알아야 한다”, “교육과기부 장관도 교육 현실을 모두 아는 건 아니다”라며 오히려 훈수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 조율 기능은 미작동 = 상황이 이 쯤 되면 교육과기부나 청와대 등에서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정책조율에 나서야 하지만 현재까지 그런 모습은 전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문제가 생기면 교육부가 중간에서 조율에 나서야 하는데 현재는 사무실 세팅조차 안돼 한 달 동안 거의 아무 것도 안했다는 말이 맞다”면서 “총선 시즌과 맞물려 문제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가장 바람직한 문제해결 방식은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가 주도적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하는 것”이라며 “다만 아직 과도기적 상황이므로 조정과 조율이 필요한데 이런 기능이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기부의 한 관계자는 “조직개편과 인사 등이 진행되면서 정신이 없었다”며 “20일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나도 4월 총선이 기다리고 있어 본격적인 업무 추진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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