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창의력을 위한 기다림의 방법

이서경 푸른소나무소아정신과 원장 2008.03.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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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경의 행복한아이 프로젝트]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 아이가 옆집에 산 적이 있었다. 그 집에서는 큰 항아리에 주스를 넣어놨는데, 한번은 그 아이가 엄마 대신 주스를 작은 병에 옮겨 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담는 동안 주스가 병 주변에 묻기도 하고 식탁 바닥에 지저분하게 흐르기도 하였다.

엄마는 아이가 끝까지 다 따를 때까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다 따르자 아이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얼굴로 안겼고, 엄마는 칭찬을 해 주었다. 어린 나로서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적어도 보통 우리네 집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은 창의력을 강조한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창의력을 기른다는 학습지를 시키고, 창의력 개발 장난감을 사준다. 그러나 그런 것만 있으면 아이의 창의력 개발에 충분할까?

창의력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강한 호기심과 몰입이다. 세계적인 천재들, 인류 역사에 창의적인 발견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위인들은 강한 호기심과 몰입의 천재들이다. 창의성 교육의 대가인 토랜스도 호기심과 몰입을 억제하는 것은 창의력 발달에 명백하게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호기심과 몰입은 자율성이 보장되었을 때 최대로 증가한다. EBS에서 방영한 한 프로그램에서는 스스로 놀도록 한 아기가, 놀이방법을 알려 준 아기에 비해 장난감에 호기심을 가지고 장시간 몰입한다는 실험 결과를 보여 주었다. 인간이 자율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에는 뇌에서 호기심과 몰입에 관여하는 도파민 분비가 증가하고, 훨씬 더 창의적인 정신 활동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창의력 발달을 위한 호기심, 몰입 그리고 자율성 향상에 고루 필요한 양육 덕목이 바로 기다림이다. 첫째, 호기심을 가지도록 기다려 준다.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원래의 용도와는 다르게 놀거나,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모를 때 엄마가 바로 고쳐주고 시범을 보이기보다는 아이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기다려 줘야 한다.

둘째, 몰입을 할 수 있게 기다려준다. 아이가 한 장난감이나 물건에 빠져 있을 때 옆에서 보기에 지루한 나머지 다른 데로 주의를 환기시키기보다는 충분한 몰입의 시간을 갖도록 기다려 줘야 한다. 셋째, 자율성을 기르도록 기다려 준다. 오래 걸린다고 아이의 신발이나 옷을 직접 입혀주거나, 주변이 지저분해진다고 엄마가 먹여주거나 젓가락 대신 포크로 냉큼 바꿔준다면 자율성을 기르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또한 기다려 준다는 것은 “혼자 신발 신어”라고 하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기다림은 아이에게 나의 시간과 관심을 주는 것이다. 앞에 나온 엄마처럼 옆에서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고, 아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역할이다.

이렇게 기다리라고 하면 엄마들의 항의가 있을 수 있다. 하루 종일 일을 해서 힘들고 지쳐있는데, 아이 하는 대로 시간을 주면 어지르고 일거리가 많아진다고. 사실 현실적으로 매번 이렇게 기다려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 때는 하다못해 10분이라도 시간을 정해서 기다려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세상에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편하고 아이한테도 좋은 황금법칙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아무리 좋은 펀드도 수익률이 좋으면 리스크가 크고, 리스크가 작으면 수익률이 작다.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얼마만큼을 투자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인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기다림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면 하루에 몇 번 만이라도 아이가 자율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 그렇다고 기다림의 자세가 무조건적인 허용과는 다를 것이다. 아이가 궁금해 한다고 해서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집어넣도록 지켜보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은 세우되 가능하면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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