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에세이]잘 걷는 법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부국장대우) 2007.09.1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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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3) :즐겁게 걷는 것이 가장 좋은 걸음이다

[웰빙에세이]잘 걷는 법


부시맨. 원시와 서구 문명의 충돌을 통쾌하게 희화했던 아프리카 원주민. 그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마사이워킹'이란 그럴듯한 웰빙 상품의 옷을 차려 입고 도심에 입성했다.

그의 걸음을 따르기 위한 훈련센터와 장비가 인기다. 그처럼 껑충껑충 걷겠다고 다짐하는 도시인도 많아졌다.



마사이워킹에 이어 '장생보법'이란 것도 나왔다. 단학선원을 만든 이승헌 선생이 고안한 이 걸음 또한 전국에 걸친 단월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어떤 걸음이든 잘 걷자고 하는 것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것마저 돈주고 사고 파는 상품으로 포장되고, 소비되는 풍토가 아쉽다. 걷기가 유행이나 패션이 되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걷기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인간은 눕거나 앉거나 뛰는 것보다 두 발로 걷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걷는 동물'이 아니던가.



마사이워킹과 장생보법. 실제로 걸어보니 정말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마사이워킹은 수렵을 위해 가볍고 민첩하게 움직이는데서 비롯된 아프리카식 보법이다. 장생보법은 운기와 조식을 결합한 동양식 보법이다.

그러나 걷는 방법만 보면 거의 비슷하다. 첫째, 허리를 곧게 편다. 둘째, 턱을 가볍게 당긴다. 세째, 시선을 자연스럽게 정면 약간 아랫쪽에 둔다. 넷째, 두 무릎을 스치듯 11자 걸음을 한다. 팔자나 안짱다리 걸음이 아니다.

다른 점은 무엇인가. 마사이 워킹은 뒷굼치부터 땅에 내려 놓고 앞굼치로 치고 나간다. 그래서 전용 신발도 가운데가 볼록한 둥근 배모양이다. 이 신발을 신고 잘 걸으려면 뒷굼치에서 앞굼치로 이동하는 보행 에너지의 리듬을 타야 한다.


장생보법은 발바닥 앞부분 3분의 1 지점에 있는 '용천혈'부터 걸음을 시작해 발가락을 움켜쥐듯 치고 나간다. 당연히 몸이 1도 가량 앞으로 기운 느낌이다. 이렇게 하면 아랫배 단전에 힘이 들어가고 복식호흡을 하기 쉽다. 엉덩이는 꼬리뼈를 말아 올리듯 약간 앞으로 내밀고 괄약근에 힘을 준다. 결국 마사이워킹에서 뒷굼치 착지 부분을 빼면 장생보법과 거의 똑같다.

그렇다면 마사이워킹으로 할까, 아니면 장생보법으로 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민도 순서가 있는 법, 진짜 중요한 것은 걷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걸어라. 걷는 습관부터 들여라. 어떻게 걷든 걷는 것은 몸과 마음에 좋다. 즐겁게 걸으면 그것이 가장 좋은 걸음이다. 편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걸으면 영혼도 건강해진다. 걷는 게 너무 좋아 더 잘 걷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때 장생보법이든 마사이워킹이든, 아니면 파워 워킹이든 배워보라.

'걷기 명상'을 생활운동으로 펼치고 있는 틱낫한 스님은 굳이 어떤 자세로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가짐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주문한다.

우선 숨을 들이쉬면서 두세 걸음 걷는다. 걸으면서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도착했다." 다시 숨을 내쉬면서 두세 걸음 걷는다. 걸으면서 말한다. "나는 집에 있다." 걸음 걸음마다 도착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고, 내 집에 있으니 편안하다.

화가 났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화를 다스린다. '숨을 들이 마시며 분노가 내 안에 있음을 안다. 숨을 내쉬며 평온한 마음으로 내 분노를 끌어안는다.' 걷기에서 깨달음과 평화의 에너지를 얻으라는 것이다. 근심이나 두려움을 다스리는 방법도 같다.

이승헌 선생도 똑같은 말을 한다. "당신이 호흡하고 있는 숨을 자각하고, 당신이 걷고 있는 걸음걸이를 자각하고, 그 흐름을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 이다."

잘 걷는 것. 그것은 형식에 갇히는 걸음이 아니라 자아의 심연을 찾아가는 걸음이다. 채우는 걸음이 아니라 비우는 걸음이다. 내 몸의 나쁜 기운과 내 마음의 욕심, 내 머리의 번잡한 생각들은 덜어내는 걸음이다.

  ☞웰빙 노트
 
*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있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 '걷는다'는 것은 단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수단일 뿐이다. 집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회사를 향해 걷는 동안 일을 생각한다. 걷는 순간의 삶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커다란 상실이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대지의 힘이 발끝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지는 걷기 명상은 바로 이 순간의 행복을 체험하게 해준다. <틱낫한, 힘>
 
* 걸으면서 마주치는 자연물에 마음을 열어둔다. 자신의 몸이 스펀지처럼 그것들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하늘의 푸른 기운이 쭉 빨려 들어오고, 온몸으로 나무의 기운, 풀 기운이 스민다. 몸은 생기로 가득찬다. 시선은 서너 걸음 앞을 내다보고 코끝에 의식을 집중하여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보통 걸음에 맞춰서 호흡을 조절하는데 두 걸음에 한 번 들이쉬고 두 걸음에 한 번 내쉬든지, 혹은 세 걸음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이 방법대로 걸으면 아무리 오래 걸어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등산할 때 활용하면 또 다른 산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나 생각들을 소리 내어 말해본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다면 큰 소리로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계속한다. 주위의 나무, 풀들에게 얘기하듯이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 놓는다. 내가 왜 우울한지, 왜 기분이 나쁜지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이 방법을 활용하면 원인과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기를 되풀이할수록 그 말들을 모두 듣고 있는 또 하나의 지혜로운 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승헌, 걸음아 날 살려라>
 
* 걷다보면 생각은 담백해지고, 삶은 단순해진다. 사소한 것에 감격하고, 더운 물 샤워에 세상을 가진 듯 행복해하고, 얼음물 한 잔에 망극해 한다. 아무 생각없이, 걷는 일에만 몰두하고, 걸으면서 만나는 것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러다보면 어느 새 길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김남희, 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로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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