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경교(記稅警敎)'… 공돈의 추억

머니투데이 김준형 온라인총괄부장 2006.09.2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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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기세경(記稅警)'
'공돈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기자와 세무공무원, 경찰을 한데 묶은 이 한국식 비하 단어를 어느 글에서 처음 봤을땐 무슨 처세책 제목이나 되는 줄 알았다.

'기세경'멤버로 살아온지 15년. 90년대 초반 언론사에 들어온 `끝물세대`이긴 하지만 촌지의 기억이 없지는 않다. 주머니에 나도 몰래 끼워져 있던 봉투를 너덜너덜할때까지 담고 다니다가 술김에 털어 마셔버린게 초년기자시절 씁쓸한 첫경험이었다.



얼핏얼핏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헤어보니 10만원, 30만원 이런 돈들이 담긴 봉투를 불쑥불쑥 건넸던 그때 상대방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지 새삼 궁금해진다. 남들 다 있는 터라 그 자리에서 돌려주지 못했거나, 어색하게 영수증을 써주고 받아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 돈들이 나의 액면가였는지...요즘 유행어로 '굴욕'이란 말이 딱이다.

기자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봐온 우리사회 '공돈문화'의 평균치는 결코 언론계보다 나을게 없었다. '공무원에게 건네진 샘소나이트 가방에 5…000만원이 들어가네 못들어가네' '기업체 사장 침대밑이 온통 현찰 비자금이었다네' '정치인이 받은 비자금 2억원을 자동차에 싣고 달릴수 있네 없네'...



이런 이야기들로 입방아를 찧지만 정작 자신 주변의 일상화된 선물이나 뇌물관행에는 관대해왔던게 우리들이다. 물좋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기업체 대리가 결혼을 하게 되자 명절때 들어오는 상품권 관리를 놓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얼굴을 붉혔다는 이야기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현실이다.

선물의 본질은 '상호성 (reciprocity)''적정성(adequate)' '공감(sympathy)'세가지이다. 일방적이지 않고 주고받는 관계이며, 적당한 효용성과 가치를 지닌 품목이며, 주고 받는 사람이 서로 '그럴 만한 사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게 선물이라는 뜻이다. (선물과 뇌물 판별법)

이 기준으로 보면 선물 아닌 뇌물이 여전히 횡행한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 십여년 사이에 많이 높아졌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그럼에도 유독 체감 탁도(濁度)가 낮아지지 않는 부문이 있다. 교육계이다. 요즘같은 명절때면 특히 학부모들의 고민이 더해진다.

얼마전 저녁 9시가 다되는 시각에 '00초등학교 학부모님들 긴급모임이 있으니, 모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아파트 구내 방송이 울렸다. 단지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가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선물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내반에서 공부할 자격이 없다며 아이를 옆반으로 끌고가 패대기쳤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선생님과의 '갈등'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왔던 아이의 사정을 알고 있던 아파트 학부모들이 나서서 연판장을 돌리기에 이른 것이다.

교사에 대한 촌지와 뇌물 문제로 아파트 단지가 들끓는게 어느 한 동네만의 사정이 아니다. 촌지없을거 같아 사립학교에 보냈는데 교사가 다른 학부모에게 100만원을 받더라는 이야기, 현금은 안받지만 대신 명품선물이 관례가 돼 있다는 이야기는 학부모들 사이에 새롭지도 않다.

지난해 정부 부처 가운데 교육부가 비위건수가 1위 였고, 그중에 일선 교사들의 비위가 1만5305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묵묵히 교단을 지키고 있는 많은 선생님들조차 '일부의 이야기'라고 항변할 힘이 없을 지경이다. 한때 기세높았던 전교조의 자정운동도 이젠 '약발'도 의욕도 떨어진듯 하다.

기자 세리 경찰이야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교사는 애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피해갈수 없다. 그래서 대놓고 입밖에 말을 내놓기도 힘들다.

80년대, 기자가 선호직종 상위에 꼽혔던 때가 있다. 군사정권의 채찍과 당근 정책에 따라 언론계에 각종 특혜와 '뒷돈'이 횡행했던 때와 일치한다. 교사가 선호직종 선두권으로 뛰어오른 배경에 관행화된 부수입의 계산이 도사리고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어울리지 않는 선물과 얄팍한 돈봉투에는 경멸도 함께 담겨온다. 청렴하거나 돈욕심이 없어서 이런 소리를 하는게 아니다. 공돈으로 인생역전 안되고, 내 값어치만 떨어진다는걸 겪어온 '기세경'멤버이기에, 선생님들은 '기세경교(敎)'의 낙인을 얻지 마시도록 드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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