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만 파괴 계획'? [PADO]

머니투데이 더와이어차이나 2023.04.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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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과 대만은 닮은점이 많습니다. 이념 대립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갈라섰고, 반세기 만에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남북관계와 양안관계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권위주의 국가와 단호히 절연하고 거리를 두는 게 당연해 보이는데 여전히 민족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그 중 하나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도 드러나는데 PADO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며 그래서 대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쌀과자 브랜드 왕왕(旺旺)은 양안관계의 독특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대만 기업이지만 중국 사업으로 큰 돈을 벌자 그 돈으로 대만 언론매체를 인수해 언론 재벌이 됐습니다. 그리고는 언론사를 통해 중국공산당에 친화적인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치러지는 대만 총통선거는 거칠게 말하자면 '친미 대 친중'의 선거가 될 전망입니다. 벌써부터 집권 민진당과 야당 국민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은 중남미 순방길의 '환승지'라는 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국민당의 마잉주 전 총통은 전·현직 총통으론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PADO가 협약 하에 전문 번역으로 소개하는 중국 전문매체 더와이어차이나(The Wire China)의 3월 26일자 기사는 왕왕 그룹의 친중 행보와 양안관계에 대한 민진당과 국민당의 입장을 잘 소개하고 있는 기사입니다.

왕왕 그룹의 계열사 언론 차이나타임스(중국시보) 건물 /사진=Wikimedia Commons (Solomon203)왕왕 그룹의 계열사 언론 차이나타임스(중국시보) 건물 /사진=Wikimedia Commons (Solomon203)


지난 2월, 놀랄만한 정도로 많은 대만 사람들이 미국이 대만을 파괴할 계획이라고 굳게 믿게 됐다.

모든 가짜 정보가 그렇듯 그 시작은 SNS였다. 워싱턴DC의 한 정치평론가가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파괴 계획"에 대해 장난스레 쓴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이를 중국어로 번역한 게 페이스북에 올라간 후 바이럴이 됐다. 그러자 대만의 인기 유튜브 뉴스 채널 CTI뉴스는 '대만 파괴 계획'에 대해 적어도 10개 이상의 꼭지를 만들어 방송했다.

심지어 베이징의 중국 외교부 일일 언론 브리핑에도 등장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언론을 통해 미국 정부가 대만의 파괴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고 말했다.



'대만 파괴 계획'이 불러온 소동의 여파는 상당히 커져서 사실상 주대만 미국 대사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재대만협회(AIT)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확고하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CTI뉴스는 미국의 성명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당 내용을 처음 중국어로 페이스북에 전파했던 대만 사람을 자사 방송에 출연시켰는데 그는 방송에서 미국이 대만을 돕는 건 오직 대만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기술을 얻기 위해서일 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구독자 210만 명을 자랑하는 타이베이 소재 언론사는 왜 이런 음모론을 퍼뜨리는 걸까?

그 해답은 CTI의 오너 차이옌밍(蔡衍明)에게서 찾을 수 있다. 대만에서 과자 사업을 시작해 중국 시장에서 큰 부를 축적했으며 대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그룹으로 손꼽히는 왕왕차이나타임스미디어그룹의 회장이다.

차이옌밍 왕왕 그룹 회장 /사진=왕왕 그룹차이옌밍 왕왕 그룹 회장 /사진=왕왕 그룹

올해 66세의 차이 회장은 로저 에일스(폭스뉴스 설립자)나 루퍼트 머독처럼 자신이 보유한 언론사의 논조를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르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차이 회장의 성향은 중국공산당과 매우 밀접하다. 일례로 그는 중국과 대만의 통일(대만에서는 인기가 없다)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그는 과거 왕왕 그룹의 신문사 7사, TV 채널 3개, 그리고 온라인 매체들을 이용해 대만의 정치 논의에 영향력을 끼치려 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차이 회장은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중국공산당의 대만 관련 업무 기구)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죠." 타이베이 소재 가짜정보 분석 NGO 더블싱크랩의 선보양(沈伯洋) 의장의 말이다. "차이 회장은 그룹 내 언론사에 중국 정부의 프로파간다와 부합하는 뉴스를 보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중국의 대외 영향력 공작에 대한 연구는 차이 회장과 왕왕 그룹을 중국 정부의 프로파간다 외주화와 검열 '상업화'의 가장 훌륭한 사례로 종종 거론한다. 왕왕 그룹은 중국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아 영업활동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진다. 워싱턴DC 소재 NGO 프리덤하우스의 2022년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대만 내 분열을 야기하고 그 외교 관계를 해치며 대만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언론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왕왕 그룹은 그런 중국의 언론 전술 중 하나를 보여준다.

왕왕차이나타임스미디어그룹은 여러 차례의 취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물론 대만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중국에 굴복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대만 사람들은 노골적인 중국과의 통일 지지를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기에, 왕왕 그룹은 보다 미묘한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의도에 의심을 제기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4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종류의 메시지는 대만 국민들에게 거의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왕왕 그룹의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으며 공산당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집권 여당인 민진당보다는 전통적으로 중국에 더 친화적이었던 국민당에서 특히 더 큰 반향을 얻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5일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로스앤젤레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5일 (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만 내 반미주의적 메시지가 너무나 널리 퍼져있어 경각심을 느낍니다."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에서 대만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카리스 템플먼 선임연구위원의 말이다. "과거에는 마이너한 매체에서만 돌던 것이 이제는 국민당 계열 메이저 언론에도 나오고 있어요." 왕왕 그룹 신문사와 경쟁하고 있는 연합보(聯合報)는 "이제 주기적으로 현 정부가 미국과 너무 가깝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싣고, 미국은 대만과 깊은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으며 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대만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거나 중국과 전쟁을 벌이려 한다거나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접수하려 한다는 사설이 실린다"고 그는 말한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지정학적 체스 게임의 졸(卒)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대만 국민도 엄연히 정부를 갖고 있다. 내년 1월이면 유권자들은 새로운 총통과 입법부를 선출하게 된다. 왕왕 그룹의 언론 보도를 보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게 되는 듯하다.

해협을 두고 양다리 걸치기
중국이나 대만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왕왕 그룹의 캐릭터 '핫키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왕왕 그룹의 쌀과자, 우유 음료, 젤리 사탕 등 모든 제품에서 이 붉은 뺨의 어린이 캐릭터를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핫키드는 어릴 적에 먹던 과자를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이미지다. 그러나 몇몇에게는 이 귀여운 캐릭터가 차이옌밍의 친중 성향을 상징한다.

차이옌밍이 언론 재벌이 된 것은 2008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그의 과자 사업은 훨씬 일찍인 1976년에 시작됐다. 당시 고등학교도 못 마친 19세였던 차이옌밍은 아버지의 통조림 회사 이란(宜蘭)식품공업에 들어갔다. 3년 후 그는 회사의 전무가 돼 왕왕 브랜드로 대만에 쌀과자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 제과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는다. 대만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가구에도 가처분소득이 늘면서 왕왕 쌀과자는 대만 시장을 장악했다. 차이옌밍은 1987년 왕왕을 독립된 식품 회사로 설립한다.

당시는 진취적인 대만 사업가들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왕왕이 설립된 해, 대만의 38년에 걸친 국민당의 계엄령이 끝났다. 이는 1990년대의 민주화와 대만 국민 정체성의 재확립으로 이어졌다. 중국이 천안문 사태로 미국과 유럽의 외면을 받던 상황에서 대만은 거대한 이웃 국가가 경제 발전을 위해 절실하게 원하던 자본과 기술, 경영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그래픽=The Wire China, PADO/그래픽=The Wire China, PADO
차이옌밍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대만 기업가를 가리키는 '타이샹(臺商)' 1세대가 됐다. 1992년, 그는 왕왕('旺旺'은 중국어로 '왕성하고 번성하다'라는 뜻을 갖는다)을 중국 시장으로 옮겨 후난성의 창샤에 첫 공장을 세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왕왕은 중국에서 번성했으며 지금도 그렇다. 2021/2022 회계연도에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는 왕왕차이나홀딩스유한회사(中?旺旺控股有限公司)는 매출 240억 위안(약 4조6000억 원), 영업이익 42억 위안(약 8000억 원)을 보고했다. 포브스는 차이옌밍의 현재 재산을 61억 달러(약 8조 원)로 추산한다.

후난성 최초의 외국 투자 공장이자 중국 본토 최초의 쌀과자 공장을 세운 덕에 왕왕은 대만 국내 시장의 경쟁업체를 낮은 가격으로 압도할 수 있었다. 왕왕은 중국에서 호텔, 병원, 부동산 사업에도 손을 뻗었고 이 사업 부문들은 나중에 선왕차이나홀딩스(神旺控股有限公司)로 분리된다.

그러나 왕왕 같은 대만 기업들이 중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대만 국내 정치 또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내분으로 두 명의 후보가 경쟁했고 그로 인한 표의 분산으로 타이베이 시장을 역임한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기회를 얻어 총통에 당선됐다. 1940년대 국민당이 대만으로 중화민국 정부를 옮긴 이래 국민당 소속이 아닌 총통이 취임한 것은 처음이었다.

천수이볜 총통은 대만의 주권을 지키겠다고 공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러 차례 대만의 독립 선언에 대해 운을 띄우기도 했다. 이는 '중화민국'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모두 금기시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국민당은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보며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에 흡수되는 것은 반대하더라도 국민당의 다수는 다른 방식의 통일을 희망한다.

"국민당의 대만 국가정체성 담론은 중국공산당의 담론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중첩됩니다." 호주국립대 대만 연구 프로그램의 정치학자 쑹원디(宋文笛)의 말이다. "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일을 원하느냐에 대해 공산당의 답변은 절대적 긍정이지만 국민당의 답변은 조건부 긍정입니다. 그것도 '조건부'에 강조가 들어가죠."

천수이볜이 2004년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하자 국민당은 해협 너머의 적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대만 정체성을 가진 국가에 대해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반대한다는 점은 새로운 관계를 쌓아나가는 데 굳건한 토대가 돼 2005년 국민당과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관계를 복원했다. 2008년, 천수이볜과 마찬가지로 타이베이 시장을 지냈던 마잉주가 총통에 당선되면서 국민당은 정권을 되찾았다. 그러자 국민당 정부는 재빠르게 대만의 여행지, 대학, 경제를 중국에 개방하기 시작했다.

/그래픽=The Wire China, PADO/그래픽=The Wire China, PADO
중국에서 과자와 우유 음료를 팔아 부를 축적한 차이옌밍은 변화하는 정치 지형 속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그는 공격적인 기업 인수에 나섰다. 차이나타임스(중국시보), CTV뉴스와 그 자매 채널 CTV를 인수했다. 그렇게 인수한 기업들을 모아 왕왕차이나타임스미디어그룹을 만든다.

차이옌밍은 또한 양안통일에 대한 욕망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와의 2012년 인터뷰에서 그는 통일 문제에 대해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원하든 원치않든 간에 통일은 머지 않아 이뤄질 겁니다… 통일을 직접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파리 소재의 언론자유 NGO 국경없는기자회(RSF)에 따르면 차이옌밍은 "결코 중국 정부에 대한 자신의 호의적 견해를 숨긴 적이 없다." 대만에서 공산당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면서 차이옌밍은 스스로 인상도 좋게 만들었다.

"그가 대만에 언론사를 보유하고 있어 중국 정부에게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 대표였으며 현재 국경없는기자회 명예이사로 대만에 2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우얼카이시의 말이다. "언론사 인수 후에 그는 중국 정권에게 더욱 소중한 인물이 됐습니다. 쌀과자만 파는 사람보다 훨씬 중요해진 거죠."

그러나 왕왕 그룹의 언론 공룡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대만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왕왕이 2011년 대만 제2위의 케이블TV 업체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中嘉網路)을 인수할 계획이라 발표하자 사달이 났다.

반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일어난 '언론 독점 반대운동(反媒體壟斷運動)'은 왕왕 그룹의 친통일 성향과 그룹이 공론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자, 언론인, 학생들의 연합이 주도한 시위가 발생하자 왕왕 그룹은 온라인에서 왕왕 그룹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학생들을 고소했는데 이로 인해 젊은 대만 국민들을 더 격분하게 만들었다. (우얼카이시에 따르면 왕왕 그룹은 비판론자들을 고소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다. "언제나 패소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겁주는 데는 유효한 전술이죠.")

왕왕 그룹의 "언론 독점" 시도에 반대하는 집회에 등장한 팻말. 왕왕의 핫키드 캐릭터가 '신문 자유' 비석을 부수는 모습이 그려졌다 /사진=Wikimedia Commons (tenz1225)왕왕 그룹의 "언론 독점" 시도에 반대하는 집회에 등장한 팻말. 왕왕의 핫키드 캐릭터가 '신문 자유' 비석을 부수는 모습이 그려졌다 /사진=Wikimedia Commons (tenz1225)
결과적으로 왕왕의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 인수는 2013년 규제당국의 저지로 실패했다. 왕왕 그룹의 야심에 대한 우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부를 일군 대만 타이샹의 활동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조명한 사건이었다.

대만 해협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타이샹 사업가들이 중국 정부가 반대하는 입장을 지지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데이비드슨 칼리지의 교수이자 <용을 선도하는 호랑이: 대만은 어떻게 중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나>의 저자인 쉘리 리거는 말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동의하는 관점을 선전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면 대만 내에서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니까요. 적어도 차이옌밍의 경우에는 그의 친중적 정치 활동으로 2012년 자신의 언론 제국 확장이 가로막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계속 차이옌밍을 지원했다. 왕왕 그룹의 중국 사업에 대한 닛케이 아시아의 2018년 탐사보도에 따르면 왕왕의 중국 사업체는 2004년부터 2018년 사이 중국 정부로부터 5억8700만 달러(약 7700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는 이 시기 기업 순이익의 11%에 달한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게 대만에서 불법은 아니나 왕왕 그룹이 중국 정부에게 재정적으로 신세를 지고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왕왕은 보도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부정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러한 부정적인 관심에도 차이옌밍은 굽히지 않았다.



이때쯤 차이옌밍이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왕양(당시에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이었다)에게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하는 모습이 중국 본토의 언론매체에 등장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통일전선 활동의 최고 기구로서 공산당 외의 정당 및 단체들이 공산당의 목표에 협조하게끔 도모한다.

얼마 후 경찰이 홍콩의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던 상황이었는데 차이옌밍은 중국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시진핑에게 대만과 중국의 "평화 통일"을 보다 신속하게 추진하고 중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일국양제' 정책을 시행해주길 촉구하는 연설을 한다.

이런 사건들은 왕왕 그룹의 논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의심하고 있던 것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왕왕 그룹 언론매체는 여전히 일부 대만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특히 전체 유권자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고연령층 국민당 지지 유권자들에게 그러했다.

한궈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과거 무명의 친중 성향 국민당 정치인이었던 한궈위는 왕왕 계열사 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아 스타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본질적으로 대만을 다시 중국으로 만들자는 그의 강렬한 주장은 골수 국민당 성향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했고 중국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부동층에게도 어필했다.

2018년 한궈위는 전통적으로 민진당 텃밭이었던 항구 도시 가오슝 시장 선거에서 승리해 파란을 일으켰다. 국민당은 소위 '한류'를 타고 다른 주요 도시의 선거에서도 이겼다. 왕왕을 등에 업고 한궈위는 재빨리 태세를 전환해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잉원에 도전했다. (CTI뉴스는 한궈위에 대한 과도한 홍보와 차이옌밍의 편집권 개입 등으로 방송 허가를 잃었다.)

차이잉원은 결국 2020년 1월 총통 선거에서 한궈위를 상대로 승리했지만(대체로 한궈위의 선거 운동에 문제가 많기 때문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한궈위가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았다.

포상
2024년 1월 13일 총통과 입법위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10개월 내로 다가왔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민진당 예상 후보인 라이칭더 현 부총통과 국민당의 다른 유력 주자들 사이의 가상대결에서 호각으로 나온다.

대만의 주권 문제에 대해서는 대만 내에 거국적인 공감이 형성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계 속에서 대만의 위치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계속 미루는 행위, 이른바 '현상 유지'는 훌륭한 내러티브가 못 된다고 지적한다.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 대만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매력적인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호주국립대의 정치학자 쑹원디는 그 결과로 대만 정치가 돌아가는 양상이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는 대신 무언가에 '반발해' 움직이는 진자 같다고 말한다.

"현상 유지 상황에서 뭔가 잘 되지 않을 경우 자연스레 일게 되는 충동 하나는 '선수를 교체하고 보자(換人做做看)', 그러니까 다른 편에게 기회를 주고 잘 되나 지켜보는 거죠."

지금까지 7년간 총통부와 입법원을 장악해 온 민진당에게는 골칫거리다. 민진당 37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진당은 이제 기득권 정당으로 비쳐지고 있다. 특히 차이잉원 총통의 두 차례 임기 동안 자란 젊은 유권자들에게 그렇다. 현재까지 라이칭더의 발언을 살펴보면 그가 집권하더라도 차이잉원이 2016년부터 취하고 있던 친미적이며 중국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대외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상 유지 정책도 이젠 매력을 잃었을지 모른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태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호전적이다. 그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어지는 참상은 중국의 침략이 정말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CTI뉴스를 비롯한 왕왕 그룹 계열 언론매체들은 그 책임을 차이잉원과 민진당, 그리고 미국 정부에 돌리고 있다.

현재까지 이러한 전략은 국민당 지지층에서 호응을 얻는 듯 보인다. 황제정(黃介正) 국민당 국제부장은 국민당 정책이 '친미, 일본 우호, 본토와의 평화'를 강력히 지향하지만 미국에 대한 대만 내의 의구심이 커지는 데는 미국의 책임도 있다고 말한다.

"대만 국민의 절대 다수는 언제나 건실한 미국-대만 관계를 선호해왔습니다. 미국의 정책이 진정으로 대만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대만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대만이 세계 패권 경쟁에서 한쪽을 택해야만 한다는 강요를 받지 않는다면 (대만 언론에서) 반미 정서가 횡행하진 않을 겁니다."

(난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29일 (현지시간) 전·현직 총통 중 처음으로 중국 본토를 찾아 난징의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도착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난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29일 (현지시간) 전·현직 총통 중 처음으로 중국 본토를 찾아 난징의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도착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나 미중 갈등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 사이에 낀 대만의 불편한 입장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대만의 지위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간주하며 대만 국민의 동의 하에 양안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길 촉구한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 확장과 주권 유지를 원하는 대만 국민들의 욕구, 점차 경색되는 미중 관계로 인해, 미국 정부의 많은 인사들은 민진당의 승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미국은 민진당과 편한 관계가 됐죠. 반면에 국민당과는 최근 몇 년간 관계가 끊어졌어요."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위원을 지냈으며 과거 대만에 무관으로 파견 근무도 했던 이반 캐너패시의 말이다. "전·현직 국민당 지도자들이 공산당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면서 미국 정부에서는 국민당에 대한 회의감을 갖고 있습니다."

워싱턴 독일마셜펀드의 아시아 담당 국장 보니 글레이저는 선거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든 "대만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지속적이며 강력한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국민당이 승리하면 중국 정부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더 자주 소통할 수 있겠지만 "경제, 외교, 국방 부문 미국-대만 협력 의제의 대부분은 계속될 것입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캐너패시 또한 '국민당이 이끄는 대만'에서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진 않다고 한다. "현 민진당 정부가 과거보다 더 온건한 입장을 취했듯 국민당도 (이번에 집권하더라도) 과거 국민당 정부가 했던 정도로 중국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픽=The Wire China, PADO/그래픽=The Wire China, PADO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여론이 대만 정부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걸 막고 있긴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글레이저와 캐너패시 모두 중국은 군사적 준비를 계속함과 동시에 양안 관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자며 국민당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번 선거는 대만의 앞날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한쪽은 중국에 대한 적대를 계속함과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동료 민주주의 국가들과의 보다 긴밀한 연대로 이어지며 다른 한쪽은 거대한 이웃과의 보다 친밀한 상호작용으로 이어진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만의 언론 환경이 앞으로도 조회수를 두고 경쟁하는 사상의 씨름판으로 남을 것이며 왕왕 그룹 언론사들은 계속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리라는 것이다.

"왕왕 언론 그룹은 매우 거대하고 그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어요." 왕타이리 국립대만대학교 신문연구소 교수의 말이다. 그는 대만 사람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길고 어떤 사안에 대해 최초로 읽거나 보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왕왕의 강점이 나오죠."



크리스 호튼(Chris Horton)은 타이베이에서 활동하는 기자로 뉴욕타임스, 애틀랜틱, 닛케이 아시안 리뷰 등에 기사를 썼다. 2000년부터 상하이, 쿤밍, 홍콩, 타이베이에 거주하며 일했다.


- 원문: 'The Plan to Destroy Taiwan' (The Wire China)
- 번역: 김수빈, 편집: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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