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즐섹합시다!"…억눌린 성(性), 터놓고 말하다

머니투데이 이슈팀 남궁민 기자 2017.04.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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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음란을 지우다]<1>'재미+정보' 솔직담백 '섹스토크' 동영상 인기… "이런 콘텐츠 기다렸다" 반색

편집자주 몰래 보고 가슴졸이며 얘기하던 '성(性)'이 달라졌다. 청년들이 당당하고 유쾌하게 얘기하는 '섹스토크' 동영상은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어두침침하던 성인용품 매장은 캐릭터용품숍처럼 예쁜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누드화가 그려진 가방을 둘러메고 누드 작품 전시장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젊은이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성 인식에 가해지는 균열을 3회에 걸쳐 만나보고, 흐름의 선두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우리 모두 즐섹(즐거운 섹스)합시다!" 첫경험, 자위, 오르가슴…. '헉!' 듣는 순간 주위를 둘러보고 소리를 줄이게 되는 단어들이 출연자들 입에서 쏟아진다. "아니지, 내가 왜?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동영상을 보다 보니 재미있고 즐겁다. 사춘기시절 부모 몰래 보던 '빨간책'이 주는 죄책감 대신 지식이 쌓여간다. 수수한 평상복 차림에 맥주 한 캔을 든 대학생들의 발랄한 성 이야기 '섹스토크'다.

편하게 공감하고 이해를 나누는 동영상 콘텐츠 '즐섹하자'의 한 장면. 김혜지 에디터(왼쪽), 김태용 기획자./사진='즐섹하자'편하게 공감하고 이해를 나누는 동영상 콘텐츠 '즐섹하자'의 한 장면. 김혜지 에디터(왼쪽), 김태용 기획자./사진='즐섹하자'


젊은이들이 성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 제작한 동영상 콘텐츠들이 SNS 등 온라인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며 화제가 되고 있다.



주제는 올바른 콘돔 사용법, 자위, 남녀가 잠자리에서 느끼는 어려움까지 다양하다. 밝고 상큼한 배경에 평범한 대학생 출연자들이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한다. 유쾌하고 즐거운 수다같은 그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성을 말할 때 들었던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사라진다.

최근 가장 많은 조회수와 댓글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대학생들이 만든 뉴미디어 매체 '알트(ALT)'가 제작한 '즐섹하자' 시리즈. 성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총 7편의 동영상에 담아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다. 유튜브에서 조회수는 100만을 훌쩍 넘기고 SNS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김태용 알트 콘텐츠 기획자도 영상에 직접 출연했다. 김씨는 "누구나 경험을 하면서도 누구도 얘기하기 힘든 게 '성'인데, 정확한 정보를 편하게 말하고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며 제작 계기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유튜브, SNS를 통해 유통되는 성 관련 동영상의 주된 소비자는 남성. 하지만 그들이 만든 '섹스 토크'의 주된 시청자는 2030세대 여성이다.

김씨는 "여성의 몸에 맞는 콘돔 이야기나 여성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반응이 많다"며 "친구들끼리 태그(친구도 볼 수 있게 친구를 게시물에 연결하는 일)를 하고 공유하는 경우도 많은데 아무래도 여성들이 편하게 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서 더 호응도가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즐섹하자' 콘텐츠에 이어지는 호의적 반응들. 실질적인 성지식이 공유되는데 만족하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사진=유튜브 댓글 캡처'즐섹하자' 콘텐츠에 이어지는 호의적 반응들. 실질적인 성지식이 공유되는데 만족하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사진=유튜브 댓글 캡처
영상을 본 대학생 박지연씨(24)는 "섹스는 연인이 함께 하는 일이지만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기 힘든 분위기가 있다"며 "처음엔 친구가 영상에 나를 태그해 부끄럽기도 했지만 성인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이어서 이후엔 꾸준히 시청하며 이해하는 부분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 모씨(52)는 "페이스북에서 처음 봤을 땐 당혹스러웠지만 꾸준히 보다보니 사회 변혁을 외쳤던 80년대에도 왜 이런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꼭 필요한 이야기지만 나도 자식들과 이런 얘기를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는데 어른들이 쉬쉬하는 이야기를 젊은 친구들이 풀어내는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고 소감을 남겼다.

시청자들의 호응에 대해 김혜지 알트 에디터는 "영상을 올렸을 때 댓글이나 메시지로 성희롱을 당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대부분 긍정적 반응으로 용기를 준다"며 "처음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꺼리던 친구들도 만나면 고민을 털어놓는 등 변화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메시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김혜지씨는 "'모두의 성'을 다룬다고 하지만 성소수자가 배제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는다"며 "왜곡되고 한정된 성 인식을 개선하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영상 출연진을 더 다양화하는 등 메시지 전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지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콘텐츠로 본인이 직접 출연한 '올바른 콘돔 사용법'을 다룬 영상을 꼽았다. 그는 특히 한국 성교육의 현실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실시한 '2015년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21만2538명 가운데 5.3%가 성경험이 있으며 평균 첫 경험 연령은 13세다. 청소년의 피임 실천율은 2015년 기준 48.7%로 미국 청소년의 피임 실천율 98.9%의 절반에 불과하다.

김혜지씨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인 콘돔 사용법조차 학교에서 가르쳐준 적이 없어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배웠다"며 "실효성 없는 성교육이 아니라 해외처럼 건강한 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성교육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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