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동네 한바퀴' 방송 영상 캡처
시작은 점심시간 햇볕 쬐기부터였다. 집에서 싸 온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다 보니 어쩔 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바깥 공기를 제대로 쐬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식후 잠깐이라도 걸어보자 마음먹고 사무실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것.
이런 재미를 알기에 KBS1 ‘동네 한 바퀴’를 즐겨본다. 발품 없이 동네지기 이만기를 따라 전국의 동네를 구경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2018년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네 한 바퀴’는 제목 그대로 동네를 돌며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히 그려왔다.
사진='동네 한바퀴' 방송 영상 캡처
모든 일은 멀리서 보고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의미 깊고 특별하기 마련이다. 간판이 없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따뜻한 밥상을 내어주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세탁소인 줄 알고 들어선 곳이 알고보면 카페인 것처럼. ‘동네 한 바퀴’는 그렇게 세상은 관심 가지는 사람에게만 속내를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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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가 주목하는 사람들은 주로 오래도록 그 지역을 지키며 살아온 토박이나 새롭게 정착한 젊은이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직하게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며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모습이 다르고 사연도 다르지만 한결같은 것이 있다. 삶이 늘 화창했던 것이 아니고 궂은날도 많았다는 것. 그럼에도 지켜내야 할 가족이 있어 버텨왔고, 고된 날을 견뎌냈기에 결국은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 삶은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이 아름답다는 것.
사실 그건 지극히 상투적이고 공영방송 교양 프로그램으로서 전달해야 하는 전형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동네 한 바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들’이 아닌 바로 ‘내’ 이야기 같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는 달라도 사람 사는 건 별다를 것 없다고, 그들처럼 나도, 열심히 일상을 일궈가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위안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건 결국 평범한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이자 제일 듣고 싶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동네 한 바퀴’는 화려하고 극적인 볼거리를 주는 드라마와는 다른, 나를 주인공으로 한 인간 극장 같은 진솔한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사진='동네 한바퀴' 방송 영상 캡처
최근 ‘동네 한 바퀴’에 반가운 곳이 나왔다. 우리 동네 라면집이 방송을 탄 것이다. 늘 지나치지만 가본 적은 없는 라면집을 지키는 주인장은 머리가 하얀 할머니셨다. 87세의 연세에도 목소리가 짱짱하신 할머니. 사연을 몰랐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그 집은 앞으로는 내게 특별한 라면집으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속담에 ‘동네 의원 용한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가까운 곳의 장점을 모른다는 의미다. 소중한 것은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데 자꾸 우리는 그걸 까먹는다. 이번 주말에는 또 우리 동네에 무슨 보물이 있는지, 어슬렁거리며 찾아나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