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아재의 건강일기] (23)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 2023.04.03 05:56

편집자주 | 육체는 하루하루 배신의 늪을 만든다. 좋아지기는커녕 어디까지 안 좋아지나 벼르는 것 같다. 중년, 그리고 아재. 용어만으로 서글픈데, 몸까지 힘들다. 만성 피로와 무기력, 나쁜 콜레스테롤에 당뇨, 불면증까지 육체의 배신들이 순번대로 찾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건강은 되찾을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와 함께한 지난 2년간의 건강 일기를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다.

/사진=유튜브 캡처

익숙함은 도전을 갈망한다. 최고의 행복에서 불현듯 불행을 떠올리듯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는 '안헤도니아'(anhedonia)라는 말이 나온다. 헤도니아(hedonia, 쾌락·행복)의 반대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스페인의 한 아름다운 마을에 방문하자 밀려오는 행복감에 말을 잃는 순간, 이 행복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빗댄 표현이다. 소위 행복소멸증후군이다.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어쩌면 행복은 소유해 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늘 도전할 뿐이다. 막상 정복하면 다시 불행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우리가 노력해 얻은 건강을 위한 익숙한 패턴 역시 결국 오래 가기 힘들다. 이젠 익숙하다 싶어 매일 거기에 정착하려 할 때 도전의 변곡점은 생성되기 마련이다.

아침, 점심, 저녁 일과에서 내 식습관과 운동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배열을 갖추고 있었다. 어느새 1년을 훌쩍 넘겼다. 채소와 과일을 곁들인 지중해식 샐러드와 계란, 우유와 하바티 치즈를 포갠 100% 호밀빵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 밥은 반만 덜어 먹고 아무리 바빠도 식사시간은 15분 이상 지키려는 노력은 이제 억지로 하는 숙제가 아닌 익숙함의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익숙함이 무르익어 자동반사처럼 움직이자, 어디선가 작은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매일 3km씩 달리던 '러닝 효과'는 어느 시점부터 효과가 미미해졌고 하루 100개 팔굽혀펴기와 20대 턱걸이는 일정한 근육의 크기를 만들어놓고 더 이상 멋진 근육질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침 식사 후 갑자기 밀려오는 졸음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숙젯거리였다.

간단한 식사 후 버스를 타면 회사 도착 중간 지점에서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잠깐 졸린 수준이 아니라 창문이나 의자 모서리에 깊이 박혀 나도 모르게 의식을 실종(?)하며 조는,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기절 직전의 상태다. 익숙함이 길어져 생긴 도태의 증거인가, 효과 좋은 항생제의 약발 만료인가.

/사진=유튜브 캡처

결국 도전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기존의 패턴으로는 건강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다. 선택은 두 가지. 기존에 하던 운동의 강도를 더 높이든가, 아니면 새로운 운동을 통한 자극을 도입하는 것이다. 기존 운동만으로도 힘들고 지쳤기에 강도를 높이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침 버스를 놓쳐 지각할 것 같아 급한 대로 '따릉이'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본의 아니게 '신의 한수'였다. 타려던 버스가 지나가고 10분 뒤에 출발했는데도, 회사 앞에서 그 버스를 내 뒤에서 발견했으니 말이다. 이런 '기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쨌든 계산해 보기로 했다. 지난 세월 버스로 이동하는 경로와 자가용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최근 맛본 자전거로 출퇴근 하기를 모두 동원해 셈을 해보니, 결과는 이랬다.

홍제동 집에서 광화문 회사까지 거리는 대략 6km 정도다. 자가용은 홍제역에서 독립문까지 늘 막히는 구간의 상황에 따라 빠르면 30분, 늦어도 4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노선이 자하문 터널로 가는 방식이라 조금 더 돌아가는 거리이긴 하나, 막히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평균 30분 정도 소요된다.

자전거는 자가용 노선과 비슷하다. 자전거가 인도와 차도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어 막히는 구간을 피할 수 있다는 점, 여러 차로 중 선택할 차로가 상대적으로 많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다만 홍제동(모래내)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길은 험로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단 한 군데도 만날 수 없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포물선 그리듯 펼쳐져 있고 차로를 이용하기에는 폭이 너무 좁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적색 신호등에 차가 멈추면 잠깐 차로를 이용했다가 차들이 몰려오면 다시 인도로 피신했다가 하는 식으로 리듬을 잘 타야 한다.


긴장을 놓치지 못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곡예 리스크(위험)보다 출근 시간 베네핏(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비단 출근 시간만이 아니다. 무악재 길 오르막을 힘겹게 오를 땐 허벅지 근육이 저절로 붙을 만큼 안간힘을 쓰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 보인다. 버스를 타면서 졸음을 참지 못할 땐 아침을 거르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는데, 한 달 째 자전거를 타면서는 이런 고민을 모두 날려버렸다.


/사진=유튜브 캡처

10여 년 전 자전거로 출퇴근한 적이 있다. 왕복 4시간을 투자해 1년 넘게 한강을 달렸는데, 근무 시간대가 달라지고 전립선 비대증이 생기면서 자전거도 멀어졌다. 몸에 이상 신호가 없었을 때 타던 자전거와 여러 군데서 이상 신호를 받고 있는 지금 타는 자전거는 분명 다르다. 건강이 나빠져서 타는 자전거는 그 목적과 효율성에 철저하게 맞춘다. 전립선이 안 좋은 남성이 자전거를 연속 3시간 이상 타면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는 걸 안 뒤로 매일 타더라도 하루 1시간을 넘지 않으려고 애쓰고(달리기 등 다른 운동도 함께 하고 있으므로), 유산소와 근력운동 모두 가능한 자전거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어떤 기어에서 어떤 스피드를 내야 하는지 조금씩 염두에 둔다.

무엇보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은 줄고 관절의 부담은 늘어나는 상황을 의식하다 보니, 체중을 분산시키면서 충격을 줄이는 여러 운동 중 더 손쉽게 빨리할 수 있는 자전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들수록 자전거를 타야 하는 이유 중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살을 빨리 빼는 '가장 기분 좋은 운동'이기 때문이다. 일단 자전거는 달리기보다 운동의 재미가 높다. 기구를 통해 나름의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나이 들면 기초대사량이 줄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비만으로 직행하는데, 자전거만큼 칼로리 소비량을 높이는 운동이 없다.

자전거로 출퇴근만 해도 살을 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이 체중은 많이 나가는데 활동량은 적은 130명을 3개 그룹으로 나눠 몸무게 변화를 추적, 관찰했다. 첫 번째 그룹은 약 14km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두 번째 그룹은 주 5회 35분씩 고강도 운동을 하고 세 번째 그룹은 주 5회 55분씩 중간 강도의 운동을 하도록 했다. 6개월이 지난 뒤 지방량을 비교했더니, 첫 번째 그룹은 4.5kg, 두 번째 그룹은 4.2kg, 세 번째 그룹은 2.6kg 각각 감소했다. 자전거로 출퇴근만 해도 주 5회 운동한 사람보다 더 많이 빠졌다는 얘기다.

/사진=유튜브 캡처

물론 이 결과가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전거가 걷기보다 칼로리 소비량이 4배 높다거나 한 시간에 300에서 700 칼로리가 빠진다거나 하는 결과들을 가볍게 봐서도 안 된다. 칼로리 소비량도 그렇지만,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이나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자전거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동이다. 체중이 1kg 늘어나면 무릎에 주는 부담이 3배 늘어난다. 체중이 10kg 불었다면, 무릎에 30kg 아이를 달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전거가 모든 운동의 근본이라거나 핵심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꾸준히 하는 운동의 익숙한 패턴이 어떤 지점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정체돼 있을 때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와 만날 수밖에 없고 그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1순위 운동 후보 중 자전거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자전거 안장에 올라 회사로 출근하려 할 때 이런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아침 졸음을 물리치고 근육을 강화하며 덤으로 시원한 바람까지 안겨주는 이 혜택들도 어느 시점에선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런 날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 들이자. 건강은 그렇게 준비된 자들을 위해 주는 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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