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이 풀어낸 佛민중의 '소리'··· 그 낯선 즐거움에 빠지다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 2013.11.15 11:20

[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 연극 '당통의 죽음'

연극 '당통의 죽음'에서 '거리의 광대'역을 맡아 다양한 군중의 모습을 연기한 소리꾼 이자람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
공연 장르는 '취향'이라는 부분이 작용하기에 평이 엇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연극 '당통의 죽음'은 유독 호불호의 간극이 심하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올린 국립극장의 '단테의 신곡'이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매진사례를 기록하다보니 공공극장 기획 공연이라는 측면에서 두 작품이 나란히 거론되기도 했다.

'당통의 죽음'을 본 관객들의 평은 크게 이런 식으로 나뉜다. '어렵고 대사전달이 약하다' vs '새롭고 연출 능력이 뛰어나다'.

독일의 대문호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이 기획·제작한 이번 작품은 프랑스대혁명을 배경으로 한다. 혁명세력의 핵심 인물인 조르주 당통(박지일 분)과 로베스피에르(윤상화 분)를 중심으로 혁명 이후 핵심 지도자들에게 나타난 심리적 혼란을 세밀하게 그렸다. 루마니아 출신 연출가 가보 톰파의 실험정신과 함께 도회적이고 세련된 현대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실제로 이 연극을 처음 봤을 때 한 장면씩 떼어서 보면 그렇게 강렬하고 인상적일 수가 없다. 아크릴을 주재료로 한 무대에 비디오아트를 접목한 장면은 인물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보여줬고, 프랑스가 아닌 지금의 서울도심과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현재 우리 이야기로 느끼게 했다.

특히 '거리 광대'역의 이자람이 창을 곁들인 질펀한 다중 연기를 뿜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일품. 첫 장면에서 술 취한 신사, 아낙네, 거지, 군인, 마부, 거리의 창녀까지 온갖 민중의 모습을 홀로 거뜬히 소화하며 극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런데 일부 배우들의 대사전달이 약했고 잔 실수가 이어지면서 전체적인 극의 균형과 연결성은 다소 떨어졌다. 촘촘한 긴장감 대신 장면과 장면사이의 붕 뜨는 느낌은 넓은 무대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강력 아크릴과 철을 주재료로 한 무대는 차갑고도 냉정한 현실의 모습을 구현하며, 권력의 내부와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들여다보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다.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
이번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혁명을 반영하는 시대적 의상이 아닌 2013년 현재에 초점을 맞췄다. 대립되는 각 캐릭터는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연출에 의한 시각적 대비로도 부각됐다. /사진제공=서울 예술의전당
그런데 이 연극은 애초에 보는 방식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야기 중심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를 따라가기 보다는 새로운 무대와 조명, 연출방식 등에 주목하고 과거 먼 나라 프랑스의 역사가 아닌 지금 우리의 현실을 투영해 바라봐야 한다는 것. 공연을 두 번째 보니 뷔히너가 주목한 다층적인 민중의 거리극 장면과 각 인물들 간의 미묘한 관계, 시각적인 극적 대비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물론 여전히 낯설었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불특정 다수 관객의 공감을 얻는 비슷한 스타일의 공연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당통의 죽음'은 같은 연극 장르라 할지라도 연출기법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과 느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낯설어서 불편할 수도 있지만 때론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다름'의 매력을 맛보는 묘미를 느끼게 한다.

◇연극 '당통의 죽음'=출연 박지일 윤상화 이자람 문형주 최지영 서광일 임진웅 김준호 조영준 염순식 양원석 조장연 이후성.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3만~5만원. 문의(02)580-1300.




당통은 누구인가?

조르주 당통(Georges Jacques Danton·1759~1794)은 프랑스 혁명가이자 정치가다. 오브 데파르트망 아르시스쉬르오브 출생으로 랭스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1785년 파리에서 고등법원 서기를 거쳐 1787년 왕실고문회 소속 변호사가 됐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J.P.마라, J.R.에베르 등과 함께 코르들리에 클럽을 결성하고 파리의 자코뱅 클럽에도 가입하여 혁명운동을 주도했다. 대단한 웅변가이면서도 낭비벽이 심하여 항상 독직소문이 무성했다.

파리코뮌의 검찰관 차석 보좌관과 법무장관을 지냈다. 국민공회에서는 산악당에 속하였고 자코뱅당의 우익을 형성하였으며 혁명적 독재와 공포정치의 완화를 요구하여 로베스피에르에 의하여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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