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전 대시인의 神曲, 오늘도 울림 주는 '新曲'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3.11.0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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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기자의 공연 박스오피스] 국립극장 연극 '단테의 신곡'

연극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 역의 지현준(왼쪽)과 베르길리우스 역의 정동환. /사진제공=국립극장연극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 역의 지현준(왼쪽)과 베르길리우스 역의 정동환. /사진제공=국립극장


"설마 모두 '단테의 신곡'을 보러 온 사람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1500석에 달하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북새통인 이유는 콘서트나 뮤지컬도 아닌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 때문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알레기에리 단테(1265~1321)의 장편 서사시 '신곡'. 유명세로는 2등이라면 서럽겠지만 제대로 읽었다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100편에 달하는 방대한 시와 함축적인 시어, 그 시에 담긴 수많은 에피소드에 철학적 고뇌까지 더해진 이 작품이 국내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제대로 이해나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래도 일단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찾아간 극장. 소곤거리는 주변 관객들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묵직하고 웅대한 고전은 그저 먼지 속에 묻혀있는 고전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 이 시대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단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생의 반 고비에서 길을 잃은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마주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를 찾기 위한 여정이 펼쳐진다.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순례는 비록 죽음 이후의 세계를 향해 가고 있지만, 터무니없는 환상을 그린다거나 꿈꾸지 못할 희망을 과시하지 않는다.



어떻게 단테의 신곡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고 내 이야기일 수 있을까. 단테가 지옥을 헤맬 때 관객 역시 지옥에 있었고, 연옥에 갈 때도 함께 그곳에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80분)을 할애한 1막의 지옥 장면은 현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단테가 만나는 마귀들, 고문 받는 죄인, 이끼 인간, 인륜을 파괴한 죄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연극 '단테의 신곡' 1막 지옥 장면 /사진제공=국립극장연극 '단테의 신곡' 1막 지옥 장면 /사진제공=국립극장
이들의 사연이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조명 등 표현의 균형이 잘 어우러진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창(唱)이 나오다니!' 창의 깊은 울림과 끓어오르는 힘은 다소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지옥의 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일렉트로닉 음악과 바리톤 가수의 구음, 배우들의 대사와도 묘하게 어우러졌다.

이어지는 연옥과 천국 장면에는 대극장 무대를 꽉 채우는 거대한 경사의 구조물이 등장한다. 희망을 등에 진채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며 견디는 인간의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지옥 같은 삶'이라고들 하지만 정작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곳은 바로 이곳 연옥이 아닐지. 지금이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스스로의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연옥과 천국의 장면은 상대적으로 작가적 상상력이 미흡해 보였다. 성악가들의 노래 역시 극에 바짝 밀착되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다소 많은 요소를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듯 했다. 하지만 위대한 원작의 힘에 한태숙 연출과 고연옥 작가의 치열한 연구 작업과 도전정신이 보태져 새로운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관객들에게는 단테의 신곡을 '드디어' 만났다는 지적 안도감과 함께 심금을 휘젓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앙코르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연극 '단테의 신곡'=9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출연 지현준 정동환 정은혜 박정자 김금미 이시웅 등. 2만~7만원. 시야제한석 1만원.

연극 '단테의 신곡' 3막에서 단테가 천국에 이르러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장면. 두 사람은 45도로 기울어진 경사 구조물에 매달려 고통을 끝내고 마침내 환희의 순간을 맞는다. /사진제공=국립극장연극 '단테의 신곡' 3막에서 단테가 천국에 이르러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장면. 두 사람은 45도로 기울어진 경사 구조물에 매달려 고통을 끝내고 마침내 환희의 순간을 맞는다. /사진제공=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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