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이 16년만에 권하는 '낮술 한잔'의 미학

머니투데이 이언주 기자 2013.11.0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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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박상천 시집 '낮술 한잔을 권하다'

시인이자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교 교수인 박상천시인이자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교 교수인 박상천


'낮술 한잔을 권하다'.

이 제목에는 시인 박상천(58)의 소탈한 마음과 사람에 대한 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권하는 한잔 술에 시름을 씻어내고, 때론 흥이 돋지 않는가. 특히 낮술에는 묘한 긴장과 짜릿함까지 더해지니 주고받는 이의 마음이 짧고도 굵게 황홀해지곤 한다.

시인이자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인 박상천이 지난 16년간의 쓴 시 85편을 한데 묶어 네 번째 시집을 펴냈다.



시인은 말머리에서 "지난 시간동안 시를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만 생각하며 살았던 젊은 시절처럼 산 것은 아니었다"며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16년의 세월을 시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또 "해설을 붙이는 일은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기도 하고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여 해설 없이 시만 묶었다"고 설명했다.

85편의 시는 '낮술 한잔을 권하다' '새들에겐 길이 없다' '누구나 외롭다' '나팔꽃 씨를 심다' '변하지 않음에 대하여' 등 모두 5부로 나눠 담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자연과 사물에 대한 단상, 고독, 회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 시인의 감성이 담담하고 때론 애틋하게 풍미를 전한다.

시집 곳곳에서 괜한 먹먹함이 몰려드는 이유는 시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집이 나오기 하루 전, 시인은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말았다. 그는 "제가 다른 일로 바빠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워한 아내가 16년 만에 시집을 낸다는 말에 참으로 기뻐했는데, 시집이 나온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며 "그것은 또 다른 아픔이었다"고 털어놨다.

어느 시인이 16년만에 권하는 '낮술 한잔'의 미학
문득 그의 시 '가고 있음에 대하여'가 새삼스럽다. "가고 있음 그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이면 출발지와 도착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고 있음' 그 자체에서 보면 '죽어가다'라는 말은 '살아가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며, 매일매일 죽어가는 것이지요. 우린 매일매일 가고 있는 것이지요."('가고 있음에 대하여' 中)


누구라도 한번쯤 고독하게 만드는 이 가을, 시인이 권하는 낮술 한잔을 함께 기울이며 우리네 인생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안전선이라는 허명에 속아 의미 없는 금지선 앞에 서서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그대에게 오늘 낮술 한잔을 권하노니, 그대여 두려워 마라. 낮술 한잔에 세상은 환해지고 우리의 허물어진 기억들, 그 머언 옛날의 황홀한 사랑까지 다시 찾아오나니."('낮술 한잔을 권하다' 中)

◇낮술 한잔을 권하다=박상천 지음. 책만드는집 펴냄. 164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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