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응급실' 앞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9.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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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추석연휴 둘째 날인 지난 14일 충북 청주에 사는 25주차 임신부는 양수가 터진 뒤 6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사를 만났다. 충북을 시작으로 서울, 인천, 심지어 제주까지 병원 75곳에 이송을 요청한 끝에 한 산부인과에서 겨우 진료받았다.

지난 15일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이 문틈에 끼어 잘린 50대 남성(광주광역시 광산구)은 광주 시내 응급실 4곳에서 모두 거절당했다가 전북 전주시 병원에서 접합수술을 받았다.



또 지난 16일 창원시 한 건물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척추 손상이 의심된 50대 남성은 경남과 부산, 울산지역 병원 70곳에 이송 여부를 문의했지만 배후진료과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가 사고 발생 2시간27분만에 부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런 '응급실 뺑뺑이'(응급실 재이송)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지난 2월 이후 8월까지 324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나 늘었다. 심지어 응급실을 3곳 넘게 돌아다닌 경우는 83%나 증가했다. 환자를 진료할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퇴짜맞은 사례(1299건)는 지난해(858건)보다 51%나 늘었다.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그리고 그 원인이 '필수의료·기피과 의사 수 부족'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또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기존의 한국의료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에도 정부와 의사집단 간 시각은 일치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의정 간 이견은 무려 7개월째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대생을 늘려 전체 의사 수가 늘면 필수의료에 지원하려는 의사도 덩달아 늘 것이라고 본다. 반면 의사집단은 수가를 개선하는 등 의료 환경을 바꾸지 않은 채 의대정원부터 늘리면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중재에 나서며 '여·야·의·정 협의체'까지 제안했지만 정작 정부의 의사집단은 '2025학년도 의대정원 규모'를 놓고 맞서고 있다.

지난 2월20일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떠난 지 꼬박 7개월이 됐다. 이미 응급실과 배후진료과에서 밤샘 당직을 번갈아 맡으며 다음 날 진료까지 봐야 하는 응급의학과와 배후진료과의 상당수 전문의는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직할 것"이라며 마음을 굳혔다고 기자에게 호소했다. 게다가 전공의 91%의 공백으로 매년 3000명 가까이 배출된 신규 전문의도 내년엔 거의 없다. 빼 온 공중보건의, 빼 온 군의관의 자리는 과연 누가 채울까.


'출산 뺑뺑이가 두려워 아기를 못 갖겠다'는 하소연도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로 산부인과계에선 분만 진료가 붕괴를 넘어 멸종 위기까지 도달했다고 거론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공의 공백 기간과 겹치는 지난 1~7월 전국 산부인과의원 중 분만 수가를 청구하지 않은 곳은 전체의 88.4%로, 2018년보다 6.2%p 늘었다. 분만 수가를 청구하지 않았다는 건 분만 행위가 없었다는 의미다.

'아프지도, 다치지도 말자'는 말이 어쩌다 추석 밥상의 덕담이 되고 말았다. 국민 누구도 건강과 생명권을 뺑뺑이 당할 권리는 없다. 낭떠러지에 다다른 지금, 의·정이 밟을 건 '가속 페달'이 아닌 '브레이크'다.
[우보세] '응급실' 앞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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