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X멜로' 김지수, 억척 엄마 옷이 이젠 잘 맞는 멜로퀸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9.1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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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냄새 가득 담긴 연기로 공감과 힐링 선사

사진=JTBC사진=JTBC


방송의 막바지를 앞둔 JTBC 드라마 ‘가족X멜로’의 장르는 가족드라마일까 멜로드라마일까. 아마 대본을 쓴 김영윤 작가나 연출을 한 김다예PD가 시청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을 질문일 수도 있을 듯하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가족의 틀 안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가족드라마의 폼을 갖고 있지만,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면 가족 구성원 사이의 멜로라는 이색적인 형질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이들이 1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균열로 부부가 이혼을 하고, 아버지는 사라진 채 어머니는 두 자녀를 데리고 삶을 일군다. 이때 엄마와 남매가 살던 집을 돌아온 아빠가 덜컥 사들이고, 엄마와 아빠는 다시 ‘연애시대’의 유은호-이동진 같은 기이한 유사 썸의 상황에 빠진다. 늘 가족이면 익숙하고, 때로는 진부할 것 같은 이야기의 틀을 이혼으로 한 번 분리했다 다시 붙여넣는 재기가 엿보인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가족X멜로’는 가족드라마일까 멜로드라마일까.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되는 원인의 가장 앞 선에는 배우 김지수의 존재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지수가 있기에 ‘가족X멜로’는 가족드라마가 될 수 있고, 또한 멜로드라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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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가 연기하는 금애연은 매번 거칠 것 없이 청춘을 구가한 과거가 있다. 야구선수 출신 변무진(지진희)과 덜컥 결혼했고, 교통사고를 당하듯 이혼했다. 이혼녀에 두 자녀를 키우는 어려운 인생이 주어졌지만, 그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야무진 모습으로 세월을 돌파하고 있다. 이러한 질주에 사심은 사치가 될 수 있다. 그는 그래서 남편이 떠오르는 연애의 감정뿐 아니라, 딸 미래(손나은)와 아들 현재(윤산하)에게 줄 소소한 사랑마저도 어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전 남편의 구애를 받고, 무엇보다 궁금한 그의 과거 때문에 자꾸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미래의 존재가 자꾸 들고나온다. ‘가족X멜로’의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틀에는 이 두 가지 이질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오가며 박음질하는 김지수의 존재가 있다.

사실 김지수의 모습은 정통 멜로에 더욱 가깝다. 멜로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 ‘종합병원’의 주경희로 아련한 사랑의 주인공이 됐다가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 ‘태양은 가득히’ ‘나쁜 친구들’ 등 젊은 감각의 멜로극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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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깊이가 더해진 작품은 2005년 이윤기 감독의 데뷔작 ‘여자, 정혜’였다. 우리에게는 가수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작품에서 상처를 안으면서도 들꽃처럼 질기게 피어나는 그런 여자 정혜를 연기하며 인상을 남겼다. 이후 ‘태양의 여자’ ‘러브 어게인’ ‘따뜻한 말 한마디’ 등 연차는 쌓여갔지만, 김지수의 이름은 멜로의 대명사로 그렇게 여겨져 왔다.



하지만 ‘가족X멜로’를 활보하는 김지수의 금애연은 다르다. 생활력도 있고, 딸과 티격태격하는 엄마로서의 억척스러움도 있다. 이 모든 감정은 다 이혼으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감추기 위해 그 위에 덧댄 생채기와 같은 흔적들이었지만 비교적 단단하게 쌓인 감정의 벽이 다시 나타난 전 남편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고, 사람으로서의 꼭꼭 감춘 속살 같은 감정을 드러내는 애연의 모습은 김지수의 연기로 살아난다.

김지수를 ‘엄마’라고 부르기엔 우리 모두가 아직은 어색한 면이 있지만, 김지수는 오히려 그런 세간의 평가를 아랑곳하게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가족으로서 딸과 아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모습이 나오면 우리는 이 작품을 가족드라마로, 그리고 전 남편과 가슴 떨리는 감정을 다시 느끼는 순간에는 멜로드라마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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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2년, 김지수가 우리의 곁을 맴돌기 시작한 기간이다. 비록 청춘스타에서 여자로 그리고 여자에서 엄마로 버전업하는 기간이 다소 길었다 할지라도 김지수는 그사이 자신을 충분히 준비하고 대비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가족X멜로’의 단단한 축으로 버티는 그의 모습이다. 그가 단단하게 버티고 있기에 극 중 변무진이 반드시 돌아와야 할 곳이 있으며, 딸인 미래와 현재가 기댈 수 있고 더불어 미래와 손을 잡는 남태평(최민호)의 지평도 열릴 수 있다.

‘가족X멜로’는 가족과 멜로의 감정 사이에서 다시 한번 ‘사춘기’를 겪고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금애연의 이야기다. 이 서사는 김지수의 오랜 공력과 고민이 있기에 단단한 느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결국 ‘가족’과 ‘멜로’를 뛰어넘는 ‘사랑’의 감정 숭고함을 전파할 수 있게 된다.

김지수의 청순한 이미지, 단아한 이미지는 이젠 진부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지수는 ‘가족X멜로’에서 엄마로서의 세계를 다시 꺼냈으며, 이는 배우로서 훨씬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있을 수 있는 당위를 제공한다. 단지 배역이 달라질 뿐이다. 김지수는 30여 년 우리의 곁에 계속 머물러 있었으며, 오히려 ‘가족X멜로’를 통해 그 노력의 신선함은 그 유통기한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성과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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