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火가 많은 시대

머니투데이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2024.09.1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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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구리 신행선원장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한국인 고유의 질환으로 여기는 병이 화병이다. 시대적 현상이거나, 혹은 민족적 특질이라거나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정신적 문제는 어느 것이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인연화합해 일어나고 그것은 머물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족이나 국가뿐 아니라 개인적 인격형성도 마찬가지다. 우연이나 필연으로 구분할 수 없는 불확정적 불가피성이라고 하면 말장난일까. 그도 그럴 것이 첨단의 거대 AI도 정확한 날씨예측이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때로는 선택이라는 미명하에 피할 수 없는 길을 강요받기도 하고 때로는 양심을 두 발로 지려 밟고 나아가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은 그 누구도 함부로 재단하고 비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없다. 그 욕망, 혹은 바람은 가진 것이 많거나 적은 것과는 무관하게 늘 밑 빠진 그릇처럼 금방금방 모자람으로 갈증을 느낀다. 그 불만족은 화병을 유발한다. 혹은 허다하게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될 곳을 찾아 나아가기도 한다.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폭음, 폭식, 폭잠?, 과도한 운동, 폭력을 행사하거나 등의 온갖 일이 일어난다. 한국 사회는 화가 너무 많다. 여타 국가의 국민들에 비하면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특별하다. 분단된 국가와 초단기 경제성장, 민주화, 1~4차 산업사회로의 급행열차를 타고 속도제한 없이 달려간다. 식량과 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뭐든 돈 되는 것은 모두 만들어 팔고 재료를 사와서 다시 뭐든 만들어서 팔고 하다 보니 지금은 차도 배도 비행기도 만들어 팔고 있다. 개인인 나지만 대한민국 역사에 감정이입해서 보면 정말 깊은 한숨과 함께 그 험난한 시대를 지나와서 오늘날의 성과를 이룬 것을 보면 감동과 뿌듯함에 이른바 국뽕 도파민이 흘러나온다.

이런 과정을 지나온 것을 보면 정상일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오며 많은 것을 놓치고 많은 것을 바라며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하는데 어찌 정상일 수 있겠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감사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 지친 몸을 쉬고자 벤치에 앉아 있다면 5분 만이라도 그의 곁에 가만히 앉아서 마음속으로 응원과 위로를 전하고 싶다. 온갖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너도 그렇다. 나 또한 그러하다. 20여년 전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린 하덕규님의 '사랑일기'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첫 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지친 어깨 위에~
공원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을 홀로 일구는 친구의 굳센 미소 위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사랑해요라고 쓴다.'

대표적 대승 경전인 화엄경엔 이 세상은 모두 꽃으로 장엄돼 있다고 한다. 하덕규님의 종교가 개신교인 것으로 알지만 저 노랫말의 가사처럼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모든 종교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모두 꽃과 같고 보석과 같은 존재다. 설사 스스로 진흙밭에, 혹은 똥통에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인연이 그 사람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것도 인연에 의한 것이기에 그것은 절대가치가 아니다. 하지만 그 인연을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하지만 꼭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좋은 일이 생긴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그 나쁜 일을 받아들이고 꼭꼭 씹어 소화를 잘 시키면 그것이 좋은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억지로 참지도 오버하지도 말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주위의 누군가가 화를 내면 잘 들어주자. 내일 일기예보는 곳에 따라 비가 오고 흐렸다가 갠다고 한다.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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