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없숲' 모완일 감독의 빠져드는 연출의 세계 [인터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08.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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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완일 감독 / 사진=넷플릭스모완일 감독 / 사진=넷플릭스


믿고 보는 감독. 작품 하나로 모완일 감독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다. 이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달아준 작품은 JTBC에서 역대 최고 드라마 시청률을 기록한 ‘부부의 세계’(2020)다. ‘부부의 세계’는 말맛이 살아있는 자극적인 대본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장센과 핍진성 있는 장면 연출로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그로부터 4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모완일 감독이 신작을 냈다. 바로 넷플릭스 시리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극본 손호영, 연출 모완일)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한여름 찾아온 수상한 손님으로 인해 평온한 일상이 무너지고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 숙박업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숙박업자들은 김윤석과 윤계상이 수상한 손님들은 고민시와 홍기준이 연기했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고 흥행을 점쳤다. 그리고 이 기대는 빗나감 없이 전 세계인들을 숲속으로 이끌었다. 지난 23일 공개된 후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분 4위를 하고 대한민국 1위에 오른 것뿐만 아니라, 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트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총 16개 국가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무엇보다도 메가폰을 잡은 이가 모완일 감독이어서였다. 영국 매거진 NME는 “모완일 감독의 연출은 눈길을 사로잡는 시각적 향연을 선사한다”라고 평가했다. 지금의 상황이 “너무 떨리고 어리둥절”하다는 모완일 감독은 사회적 메시지보다 공감을 얻고 싶었다며 조심스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즈(IZE)에 꺼내놓았다.



모완일 감독 / 사진=넷플릭스모완일 감독 / 사진=넷플릭스
작품이 공개된 후 호평이 지배적이지만 진입장벽이 높다는 평가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메시지가 세고 심오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마치 학교 가기 싫은데 또 학교 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걸 싫어해요. 초반부에 보시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주 조금만 참고 보시면 재미를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이 작품은 어떤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 있어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공감을 던지고 싶습니다.”


7화를 제외하고 모든 회차에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 났겠는가?”라는 내레이션이 있어요. 문장 자체도 심오하지만 이를 매 회차마다 반복하니 더 심오하게 느껴져 진입장벽을 높인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맞아요. 그 부분이 심오하게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작가님과 내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죠. 회차마다 내레이션을 하는 인물들이 달라요. 내레이션을 누가 하느냐가 되게 중요했어요. 내레이션 하는 인물의 저마다 감정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들의 사건을 아버지가 이야기하고 아들이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구조로요. 문구의 의미도 전달되면 좋겠지만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전달됐으면 했어요. 오랜 시간에 걸쳐 감정들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바랐어요.”



극 초반에 영하(김윤석)와 상준(윤계상)이 한 인물처럼 보였는데 의도한 걸까요?

“대본 상 의도된 거긴 해요. 두 캐릭터가 전혀 연결고리는 없거든요. 그런데 모든 개구리들이 연결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상준이 곧 영하입니다’라는 걸 의도하고 만든 게 맞아요. 둘 다 돌에 맞았고 그런 일을 겪은 영하와 상준의 감정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영하와 상준의 시대 배경이 다르다는 걸 알아채기까지 시점이 모호하기도 했어요.



“혼란을 드리려는 목적보다는 두 인물의 시간을 분리하면 명확하게 논리적인 사건이 되거든요. ‘과거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현재에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논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두 감정선이 섞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두 인물의 감정이 연결돼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었죠. 시점을 명확하게 하려니 오히려 축이 무너진 것 같더라고요.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영어 제목을 한글 제목의 직역이 아닌 ‘The Frog’(개구리)로 한 이유가 뭔가요?

“해외에는 개구리 속담이 없어요. 오히려 이 제목을 던졌을 때 해외 시청자들에게 장르적인 해석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글 제목을 직역해서 지으면 외진 곳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범인을 잡기 위한 추적극으로 오인할까 봐 그런 것도 있고요. 사실 영어 제목이 촬영 중간에 바뀌었어요. 이 이야기의 본질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이 아니라 그 피해자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라는 걸 전하는 게 절실해서 ‘The Frog’로 바꿨습니다.”



모완일 감독 / 사진=넷플릭스모완일 감독 / 사진=넷플릭스
두 사이코패스가 살인하는 과정을 담은 장면은 나오지 않는데 의도한 바가 있을까요?

“살인 장면은 무서워서 안 찍었어요. 찍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워서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어요.(웃음) 그럼에도 비주얼적인 충격 없이 가면 ‘뭘 그렇게 유난이야’라고 극 중 식당 아주머니가 했던 대사처럼 피해자들이 왜 트라우마를 겪는지 시청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을 담았어요. 피해자들이 왜 트라우마를 겪는지 이해의 여지를 줘야 하니까요. 그리고 진짜 공포는 비주얼적인 요소 없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죽는 순간을 묘사하지 않아도 공포를 줄 수 있다면 메시지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 싶어요.”



성아 역의 고민시 배우에 대한 연기 호평이 많은데 예상했나요?

“촬영하면서 처음에는 ‘나하고 고민시만 잘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가 한 달쯤 지나서 ‘나만 잘하면 되겠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작품이 공개되면 배우 고민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죠.“

극 중 친구로 나오는 윤계상과 박지환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굉장히 좋았어요.



“현장에서 둘이 뭔가 막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카메라 밖에서도 되게 친한 친구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어보면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이미 자연스럽게 친구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서 둘이 연기하는 신들은 디렉션이 거의 0%였어요. ‘어떻게 연기하실 거예요? 하세요”라고 말한 다음에 그냥 찍었던 기억이에요.”

영하 역의 김윤석 배우 이야기도 안 할 수 없어요.

“김윤석 배우는 현장에서 즐긴 느낌이에요. 촬영이 끝나도 퇴근도 안 하고 1박 2일 동안 현장을 안 떠나더라고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잘 놀아요. 현장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배우니까 항상 연기하는 게 긴장되겠지만 그냥 보기에는 즐긴다는 느낌이었어요. 막 웃다가 자기 신을 찍고 또 놀다가 집중해서 찍고 그러더라고요. 편하게 있다 가신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결과물은 너무 좋아서 다른 배우들이 사실 좀 짜증을 냈어요. 배우로서의 힘과 집중력이 대단해요. 똑똑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고 있지만 KBS 재직 시절 ‘드림하이’ 같은 청춘물을 연출하기도 했어요. 근래 어두운 작품을 연달아 해왔으니 다음 작품에서 청춘물은 어떠세요?

“지금 모완일의 시각이 아니라 지금 20대의 시각으로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하죠. 20대를 지나서 비겁해진 시간들이 있었어요. 지금 청춘들이 어떤지 모르니까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멋진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아요. 힘들어서 못 만드는 거죠.(웃음) 영국 BBC ‘노멀 피플’ 같은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저도 그런 작품이 나오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걸 만들려면 도움을 받긴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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