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지팡구의 전설, 그 이후

머니투데이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2024.08.2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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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지팡구 섬에는 모든 사람이 막대한 양의 황금을 가지고 있으며 임금이 사는 궁전의 지붕은 순금으로 돼 있고 손가락 2개 정도의 폭으로 두껍게 순금이 마룻바닥에 깔려 있다.' 13세기 '동방견문록'의 주인공 마르코 폴로는 20년간 아시아를 여행하고 온 후 황금의 섬 '지팡구'(Cipangu)를 이렇게 묘사했다. 중국에서 일본국을 부르는 말인 '지펀구'가 지팡구가 되고 나중에 재팬(Japan)이 된다. 일본이 황금의 나라로 서양에 알려진 계기다.

마르코 폴로의 이 엄청난 가짜뉴스는 온 유럽을 들썩이게 했다. 대항해의 시대에 황금의 나라 지팡구의 전설은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뿐 아니라 많은 탐험가가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이 됐다. 사실 일본은 8세기인 나라시대부터 금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해 신사유람단 성격의 '견당사'(遣唐使)를 통해 금을 수출한 것이 '지팡구' 전설의 출발이다.



금의 역사는 사실상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6000년 전쯤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금은 이집트, 인도 등 고대국가에선 빠지지 않는 중요한 귀금속으로 신성함과 고귀함의 상징이었다. 그 희소성으로 인해 중세엔 연금술을 촉발했고 금을 찾기 위한 노력이 대항해 시대를 만들었으며 미국 서부시대 개척사의 핵심도 '골드러시'였다.

장식품, 귀금속이던 금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금화를 만들기 시작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폐가 갖춰야 할 필수요건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가치가 안정적일 것, 품질이 균질적이며 분할해도 가치가 유지될 것, 마모되지 않으며 운반과 보관이 용이할 것 등이다. 이런 기준에 딱 맞아떨어지는 금은 19세기 이후 금본위제도가 정착되면서 국제간 거래에서 결제를 위해 사용되는 국제통화가 됐다. 2차대전이 끝나고 금본위제도가 붕괴된 이후 1971년 미국이 달러화와 금의 태환을 중지하면서 금은 화폐가 아닌 상품으로 자리매김을 다시 하게 됐다.



최근 금값이 그야말로 '금값'이 됐다. 얼마 전엔 온스당 2570달러로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값 상승에 불을 지핀 것은 미국의 금리인하 가능성이다. 실업률 상승 등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금과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금리인하로 인한 실질금리하락은 이자수익이 없는 금의 상대매력도를 더욱 높이기도 한다. 여기에 중동지역 등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는 점도 금값 강세의 한 원인이다.

미국은 195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진행된 금리인상 사이클이 끝난 이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평균 4.7개월 이후부터 금리인하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달러는 약세를 보였고 금값은 1971년 금태환을 중지한 닉슨쇼크 때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하게 일어나거나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을 때 크게 상승했다.

인간에게 금은 다른 물질과 완전히 격이 다른 존재다. 이제는 화폐의 기능을 하지 않지만 여전히 준화폐적 성격을 띠며 상품으로서 가치도 다른 무엇보다 높다. 그 옛날 모험가들처럼 황금의 나라 '지팡구'를 찾는 도전이 이어진다면 금값은 어떻게 될까.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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