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힘든 시간은 있다, 날 보며 희망 얻길" 153번 좌절→31세에 우승 또 우승, 대기만성 교과서 배소현 [안산 현장]

스타뉴스 안산=안호근 기자 2024.08.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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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현이 18일 2024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더헤븐 마스터즈(총상금 10억원)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KLPGT 제공배소현이 18일 2024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더헤븐 마스터즈(총상금 10억원)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KLPGT 제공


"골프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보면서 희망을 얻었으면..."

10년이 넘도록 우승 한 번 없었다. 무려 153번이나 우승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해야 했다. 넘어지고 또 넘어졌고 드디어 정상에 우뚝 섰지만 다시 흔들리는 시간이 있었다. 이젠 그마저도 극복해내며 진정한 최상위 골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배소현(31·프롬바이오)은 1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더헤븐 컨트리클럽(파72·6680야드)에서 열린 2024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더헤븐 마스터즈(총상금 10억원) 최종 3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적어내 최종 합계 15언더파 201타를 기록해 황유민(21·롯데), 서어진(23·DB손해보험)과 치른 연장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배소현은 이예원, 박현경(이상 3승), 박지영(2승)에 이어 올 시즌 4번째 다승의 주인공이 된 배소현은 우승 상금 1억 8000만원과 부상으로 6800만원 상당의 '렉스필 명품 매트리스'와 300만원 상당 '폴란드 구스 침구 풀패키지'까지 손에 넣었다.

더불어 올 시즌 전까지 우승 한 번 없었던 배소현은 시즌 누적 상금 5억 1477만 3722원으로 랭킹 8위로 7계단 뛰어올랐고 위메이드 대상 포인트에서도 70점을 추가해 총점 231점으로 6위 상승한 6위에 랭크됐다.



배소현이 샷을 하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KLPGT 제공배소현이 샷을 하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KLPGT 제공
공동 선두로 서어진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배소현은 보기 없이 4타를 줄였다. 18번 홀(파5)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263.4야드 날려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시켰다. 드라이브 비거리 252.26야드로 6위에 올라 있는 배소현의 남은 거리는 255.5야드로 충분히 이글 찬스를 노려볼 수 있었다. 16.9m 이글 퍼트를 홀 1.8m 근방에 세우며 우승을 직감케 했으나 버디 퍼트가 빗나가며 결국 승부는 연장으로 향했다.

황유민이 1차 연장에서 미끄러졌고 2차 연장에서도 서어진이 완벽한 어프로치 샷으로 버디를 잡았으나 배소현도 그린을 벗어난 세컨드샷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히 홀 주변으로 공을 붙여 버디로 3차 연장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공격적인 전략을 택한 배소현의 세컨드샷이 이번엔 벙커 앞 러프에 빠졌다. 현장에선 순간 탄식이 터져나왔고 승리의 여신이 서어진을 향해 웃어주는 듯 했다. 배소현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서어진이 버디 퍼트에 실패했고 서어진이 3번째 샷을 홀 가까이 완벽히 붙이며 결국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배소현은 "초대 챔피언이 될 수 있어 영광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첫 우승 후 두 번째가 중요하다고 이시우 프로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승할 수 있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소현(왼쪽)이 우승 후 캐디 이승하씨와 포옹을 나누고 있다. /사진=KLPGT 제공배소현(왼쪽)이 우승 후 캐디 이승하씨와 포옹을 나누고 있다. /사진=KLPGT 제공
첫 우승까지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 했고 최근 4차례 대회에서 3번이나 컷 탈락하며 부침을 겪었지만 2개월여 만에 다시 2승의 기쁨을 누렸다.

배소현은 "전지훈련 기간 중 작년에 아쉬웠던 쇼트 게임을 보완해 전체적인 스코어 관리 능력에 도움이 됐다"며 "제주 삼다수 마스터즈를 앞두고 행사 등이 겹쳐 잘 못 쉬었는데 이번엔 연습과 레슨에만 집중했다. 다음주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샷 감을 올려두려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정규 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팅 실수가 뼈아팠다. 배소현은 "16,17번 홀에서 퍼터가 강하게 맞아 마지막엔 정확히 거리감을 맞추려고 했다. 생각보다 첫 퍼팅이 짧아 애매한 거리가 남았고 솔직히 조금 떨렸다. 이걸 넣으면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오랜 만에 많이 떨면서 쳤다"면서도 "못 이겨냈다는 생각에 실망했지만 연장이라는 기회가 있어 한 번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조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연장에서 서어진이 잇따라 환상적인 어프로치를 뽐내며 버디를 낚았지만 배소현은 굴하지 않고 계속 공격적인 전략을 택했다. "대부도가 주말에 차가 많이 막힌다. 차 뚫릴 때까지 천천히 치자고 했다. 길게 봤다"며 "파 5에선 버디 싸움이라고 생각했고 핀 위치를 바꿨지만 서어진 선수가 아이언 샷감이 좋은 걸 18홀 내내 봤다. 버디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길게 봤다. 서어진 선수로선 3차 연장에서 아쉽게 끝났지만 조금 더 길게 보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배소현(가운데)이 이시우 프로(오른쪽), 캐디 이승하씨와 함께 입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KLPGT 제공배소현(가운데)이 이시우 프로(오른쪽), 캐디 이승하씨와 함께 입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KLPGT 제공
우승 직후 중계사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기만성형 선수로 소개하며 "'저 같은 선수'도 해냈다"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배소현은 '저 같은 선수'라는 말의 정의에 대해 "대기만성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다. 2부 투어 기간이 길었고 정규 투어에서도 한 번에 두각 나타낸 선수가 아니었다"며 "예선에서 떨어지고 주말에 연습장에서 편하게 연습을 하는데 한 팬이 알아보시고 '2부 투어 때부터 팬이었다, 올해 우승하고 좋은 성적 거두는 걸 보며 내가 다 기분이 좋고 사람마다 꽃피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시기가 온 것 같다'고 해주셨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골프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하는 만큼 되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면서도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지 않아도 꾸준히 결과를 얻어 나가면서 좋아지는 사람도 있으니 나를 보면서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말했다"고 덧붙였다.



초대 대회지만 우승자의 특별한 세리머니가 준비돼 있었다. 클럽 내 리조트에 인피티니풀이 마련돼 있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의 메이저 대회 셰브론 챔피언십과 마찬가지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캐디, 가족 등과 함께 입수를 하는 퍼포먼스다.

배소현(가운데)과 이시우 프로(오른쪽), 캐디 이승하씨. /사진=KLPGT 제공배소현(가운데)과 이시우 프로(오른쪽), 캐디 이승하씨. /사진=KLPGT 제공
기분 좋게 몸을 던진 배소현은 "어머니는 들어가기 싫다고 하셔서 안 들어가셨고 캐디 오빠, 이시우 프로와 함께 입수했다. 더운 날씨였는데 풀장에 들어가니 시원하고 너무 좋더라"며 "대회를 앞두고 (우승자가 입수를 한다는) 공지가 전달됐고 '혹시 모르니 준비는 해가야지' 생각에 여벌의 옷을 준비했다. 컷 통과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승하면 빠져야 된대요'라고 장난치면서 기분 좋게 대회에 임했다"고 전했다.

투어 입회 후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전성기를 맞은 배소현. 반면 30대만 넘어도 투어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 대해 "많이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다. 여자 선수들이 특히나 선수 생명이 짧다. 제 생각에 골프는 다른 스포츠보다는 본인 의지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꽤나 길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선수 생활하는 걸 좋아하고 길게 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것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고 체력이나 비거리 등 조금씩 아쉬운 걸 채워 나갔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투어에서 활약 중인 (안)선주, (박)주영 언니 등을 보며 따라가고 있다. 저 역시도 당장 성적이 안 나와도 나를 보며 따라왔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2년간 시드를 얻었고 우승자로서의 위상도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배소현은 "시드를 확보했으니 주변에서 편하게 하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매 해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했고 그런 강박도 있었다. 앞으로도 우승은 우승이고 매 시즌 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올해, 내년은 내년일 뿐이다. 너무 안주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배소현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KLPGT 제공배소현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KLPG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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