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시장반발 무릅쓰고 반도체 투자 대신 골프장 산 이유는

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2024.08.14 05:05
글자크기

[DB의 밸류업은 가능할까] ① 반도체 회사에 골프장 떠넘긴 DB

편집자주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벌어들인 과실을 투자자들과 함께 향유하려는 기업의 진정성이 동반돼야한다. DB하이텍은 비금융 상장사 중에서 가장 먼저 밸류업 예고공시를 내놓는 등 전향적 모습을 보였으나 동시에 DB Inc 지주사 만들기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들과 소통문제가 덤으로 거론된다. 자본시장에서 DB와 DB하이텍의 진로는 어디일까.

DB하이텍 주가 추이/그래픽=김지영DB하이텍 주가 추이/그래픽=김지영


DB그룹의 주력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DB하이텍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좋지 못하다. 지난해 반도체 설계 사업부 분사를 위한 물적분할을 놓고 소액주주들과 갈등을 빚더니 올해는 본업과 무관한 계열사 골프장 사업에 투자해 주주환원 정책에 쓸 재원에 부담이 생겼다. DB하이텍은 다음달까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해야 하는데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1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DB하이텍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실적은 매출액 2989억원, 영업이익 683억원으로 잠정집계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3.22% 감소했고, 영업익은 36.79% 줄었다. 전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15%, 영업이익은 66% 증가했다.



DB하이텍은 최근 1~2년간 주식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은 업체다. 지난해 행동주의펀드 KCGI의 지분매입으로 주가가 출렁였고 KCGI가 사들인 주식을 블록딜로 되팔면서 주가가 다시 급락했다. 피해를 입은 소액주주들이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며 의결권을 모아 소송에 나서기도 했다.

잇단 잡음에 시달리던 DB하이텍은 지난 6월 KB금융과 키움증권에 이어 코스피시장에서 세번째로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예고공시를 내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을 달랬다. 3분기까지 밸류업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 나오고 국민연금이 지분을 추가 매수하고 실적개선 기대감이 더해지며 주가가 회복되는가 싶었는데 돌연 골프장을 운영하던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데 거액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투자자들이 밸류업 대신 골프채를 집어든 셈이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DB하이텍은 지난달 3일 디비월드의 주식 549만주를 494억원에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디비월드는 DB하이텍(18.35%)과 DB(33.97%), DB메탈(5.62%)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로 충청북도 음성에 있는 골프장 레인보우힐스CC를 운영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도 한다. 이번 주식 취득으로 DB하이텍이 보유한 디비월드의 지분은 57.94%가 된다. DB하이텍은 이번 주식 취득 목적을 "신수종사업 진출 및 첨단 반도체 사업 보안 강화"라고 밝혔다.

DB하이텍이 밝힌 신수종사업은 본업인 반도체와는 관계가 없는 고부가 부동산 사업이다. 사업 실체도 불확실하다. DB하이텍은 언론 보도를 통해 DB하이텍의 신수종사업은 디비월드가 현재 충청북도 음성군과 진행 중인 미래기술문화특구를 가장 먼저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음성군은 사업에 대해 들은 바 없다며 반발, DB하이텍의 보도를 수정해달라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부정적인 것은 증권가 시각이다. 디비월드 지분이동은 단순한 골프장 지분 변동이 아니라 DB하이텍의 자금을 지주회사인 DB로 이전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DB는 올해 그룹의 지주사로 전환했다. 공정거래법상 요건을 갖추기 위해 DB하이텍에 대한 지분을 3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지난 5월기준 DB는 DB하이텍 지분 약 20%를 보유하고 있다.


DB하이텍의 주가가 연간 고점 대비 30%가까이 하락했지만, 지난 1분기 기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자산이 100억원에 불과한 만큼 지분 매입을 위해선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DB하이텍은 DB그룹 내에서 알짜 중 알짜 회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DB가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DB하이텍에 디비월드 지분을 판 돈으로 DB하이텍 지분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DB하이텍 주가가 하락할 것을 우려한다. DB하이텍의 주력인 레거시 반도체 업황 반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지난해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은 차세대 전력반도체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와 무관한 회사를 사들이는 행보를 보인 탓이다. DB가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DB하이텍에 비주력 자회사를 사실상 떠넘겼다는 인식도 나온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DB하이텍을 보유 중인 투자자 중 93%가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B하이텍이 사들인 디비월드의 수익성도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디비월드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136억원, 2022년 109억원, 2023년 51억원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또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12인치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와 전력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이제 시작됐는데 골프장을 사들이는 게 어떻게 사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주주에게 충분히 해당 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