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칼로 물베기'도 옛말…북·중 살벌한 부부싸움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08.1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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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뉴시스] 최동준 기자 = 북한 방철미가 4일(현지시각) 프랑스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kg급 준결승에서 중국 창위안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24.08.04 [파리=뉴시스] 최동준 기자 = 북한 방철미가 4일(현지시각) 프랑스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kg급 준결승에서 중국 창위안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다. 2024.08.04


최근 중국 산둥성(山東省)에서 한 대북소식통을 통해 전해들은 북한 주민들의 식량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먼 친척들을 만나 함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1년에 한 번 북한을 찾는다는 그는 "만약 우리 가족이 제삿날 달러와 위안화 뭉치를 전해주지 않으면, 그 일가가 살아서 겨울을 넘긴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는 이제 배급 기능마저 상실하고 자본주의나 다름없는 장마당 체제로 운영된다. 여기서 달러나 위안화로 식량이 거래된다. 주민 생계 유지 수단이자 정권 외화 확보 수단이다. 탈북자들의 대북 달러 송금이 묵인되는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에 친지가 있으면 사정이 낫지만, 이 도움이 끊기면 역시 속절없이 생존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북·중 간 올 상반기 무역 데이터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소리(VOA)는 최근 중국 관세청 격인 해관총서를 인용, 중국의 상반기(1~6월) 대북한 쌀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7%로 급감(5339만달러→571만달러)했다고 전했다.

쌀뿐 아니다. 밀가루 수출은 작년의 23%(1801만달러→415만달러)로 줄었다. 사료로 쓰이는 옥수수와 농업생산에 꼭 필요한 질소비료 수출은 각각 작년의 1.3%, 0.3% 수준에 머물러 사실상 완전 중단됐다.



기타 HS코드 중 유엔(UN) 안보리가 대북수출을 금지한 제품 수출은 약 3만8864달러로 우리 돈 약 5000만원어치에 그쳤다. 작년 상반기엔 그 열 배인 35만5355달러어치가 수출됐고, 하반기엔 다시 그 7배에 가까운 223만7362달러어치가 수출됐었다. 무역으로만 보면 올 상반기에 북·중 국경은 사실상 닫혔다.

해석은 두 가지다. 중국이 서방 제재를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 지원을 서류상 축소시켰다는 게 첫 번째다. 근거가 약하다. 중국의 식량지원은 '고난의 행군' 이후 계속돼 왔던 양국 동맹의 상징이다. 최근 중국 대북지원이 새삼 문제된 경우도 없다. 굳이 숫자를 조작할 이유가 없다.

무게가 실리는 건 최근 러시아를 중심에 두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북·중 관계 반영 해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한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러차례 중국을 찾아 지지 호소 겸 우군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무기 지원도, 공식 전쟁 지지 메시지도 없다. 러시아가 느끼는 서운함의 징후는 차고 넘친다. 이 틈을 파고 들어 러시아와 밀착한 게 북한이다.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공급했다.


러시아도 화답했다. 올 상반기 북한에 1200톤 가량 밀가루를 신규 수출했다. 드러난 숫자는 우리 돈 약 4억원어치로 많지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 적더라도 북한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다. 한 줌 영향력으로 줄타기를 시도하는 북한을 손봐주려는 중국 입장에선 북·러의 행보가 얄밉다. 가뜩이나 미국 트럼프 정권 재탄생 후 북·미 관계까지 신경써야 하는 중국이다. 로드먼이 또 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고난의 행군 시기 무너질 뻔한 북한 정권을 지탱한 게 중국의 식량지원이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명나라 관계와 비견하며 신 재조지은이라 할 정도로 의미가 크다. 그런 식량지원을 끊는다는 건 '너희 정권을 무너트릴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북·중 갈등을 흔히 '칼로 물 베기' 격인 부부싸움에 비유하는데, 물이 아닌 살을 베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얼마 전 한 북한 외교관이 3000만달러(약 415억원)에 달하는 김정은 비자금을 갖고 중국을 통해 제3국으로 도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외교인력 동선은 안면인식 CCTV로 실시간 파악하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가 '통로'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은 다른 북한 외교관들을 밀수 혐의로 조사하기도 했다. 역시 이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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