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마인드마크
‘빅토리’는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과 21세기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던 1999년의 거제도를 배경으로 춤에 죽고 춤에 사는 필선(이혜리)과 그의 단짝 미나(박세완)가 초짜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엄정화의 백댄서를 꿈꾸는 필선은 춤실력으로 거제바닥을 평정한 춤꾼이고 스스럼없이 “내는 거제가 좁다”고 말할 만큼 춤에 진심이지만 현실은 교내에 춤출 연습공간이 없는 처지. 그러다 서울에서 치어리더였던 세현(조아람)이 축구 유망주인 오빠 동현(이찬형)과 함께 전학을 오자, ‘응원을 받으면 경기력이 50% 상승된다’며 축구부 우승에 진심인 교장을 꾀어 동아리 연습실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물론 치어리딩은 대외용 명분이고, 실상은 춤출 공간 확보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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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선은 꼭 혜리여야 했다는 박범수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그룹 걸스데이 출신 이혜리는 힙합 댄스와 치어리딩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동시에 학교의 ‘통’으로 소녀들의 선망을 받는 멋진 날라리 필선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처럼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캐릭터라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사전에 있었으나 기우였다.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하는 ‘걸크러시’ 매력의 필선에서 덕선의 모습은 전혀 겹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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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처럼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청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도 ‘빅토리’의 특징. ‘땐뽀걸즈’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최종병기 앨리스’와 영화 ‘육사오’ 등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박세완이 이혜리와 함께 기가 막힌 호흡을 보여주고, ‘닥터 차정숙’을 거쳐 최근 종영한 ‘감사합니다’로 주연급으로 성장한 구구단 출신 조아람이 세현을 맡아 이제 그의 전매특허처럼 보이는 딱부러지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무빙’ ‘감사합니다’의 이정하와 축구선수 출신으로 자연스럽게 축구 유망주를 연기한 이찬형 외에도 ‘밀레니엄 걸즈’로 호흡을 맞추는 최지수, 백하이, 권유나, 염지영, 이한주, 박효은 등 신인 배우들의 풋풋한 매력이 화면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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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칠 만한 영화적 쾌감이나 재기 넘치는 이야기는 없다. 대신 ‘빅토리’가 선사하는 건 세기말과 2000년대 초를 지배했던 경쾌하고 밝은 감성이다. 이미 2000년에 치어리딩을 소재로 했던 할리우드 영화 ‘브링 잇 온’은 물론 오합지졸의 청춘들이 모여 함께 하모니를 이루고 그들의 노력과 에너지로 보는 이들의 활기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란 점에서 2000년대 초 일본영화 ‘워터뵈즈’ ‘스윙걸즈’ 같은 일련의 영화들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박세완이 출연하고 거제도를 배경으로 댄스 스포츠를 추는 여고생들을 그린 성장 드라마 ‘땐뽀걸즈’가 떠오를 수도 있다. 추억팔이와는 조금 다른, 청춘들의 밝은 에너지를 귀여워하고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빅토리’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겠다. 조금 아쉬운 건 웃음의 타율이다. 소소한 코미디를 곳곳에 던지는데, 타율이 생각보다 높진 않다. 기억에 남는 건 교장선생님(주진모)의 ‘수학 개그’ 정도?
1984년에 결성된 거제고교에서 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치어리딩 팀 ‘새빛들’ 이야기를 모티로 한 ‘빅토리’는 신나고 경쾌한 춤사위로 모두에게 응원을 던진다. 경기력 최악인 만년 꼴찌 축구팀도, 하루하루 삶의 노고를 쌓는 시장통의 상인도, 병마와 싸우며 고통받는 병원의 환자도, 빨간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주말에 쉬게 해달라 부르짖는 조선소 파업 현장의 노동자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 누구도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감독의 바람처럼, ‘빅토리’가 응원이 필요한 이 시대에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8월 14일 개봉.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