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빅토리’, 배우들은 귀엽고 추억은 힘이 세니까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8.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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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응원이 필요한 세상, ‘빅토리’의 ‘밀레니엄 걸즈’가 응원합니다

사진=마인드마크사진=마인드마크


1988년에 개다리춤을 추던 피켓걸 ‘덕선’이가 힙합을 사랑하는 치어리더 ‘필선’이 되어 1999년에 떨어졌다. Y2K 감성이 뉴트로 열풍을 타고 유행인 이 시대에, ‘응답하라 1988’로 80년대 향수를 진하게 선사했던 이혜리가 세기말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 ‘빅토리’로 돌아와 만인에게 상큼한 응원을 던진다니,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빅토리’는 세기말에 대한 두려움과 21세기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던 1999년의 거제도를 배경으로 춤에 죽고 춤에 사는 필선(이혜리)과 그의 단짝 미나(박세완)가 초짜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엄정화의 백댄서를 꿈꾸는 필선은 춤실력으로 거제바닥을 평정한 춤꾼이고 스스럼없이 “내는 거제가 좁다”고 말할 만큼 춤에 진심이지만 현실은 교내에 춤출 연습공간이 없는 처지. 그러다 서울에서 치어리더였던 세현(조아람)이 축구 유망주인 오빠 동현(이찬형)과 함께 전학을 오자, ‘응원을 받으면 경기력이 50% 상승된다’며 축구부 우승에 진심인 교장을 꾀어 동아리 연습실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물론 치어리딩은 대외용 명분이고, 실상은 춤출 공간 확보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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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을 치르고 우여곡절 끝에 9명의 응원단을 꾸려 ‘밀레니엄 걸즈’라는 이름까지 붙였지만, 애초 필선-미나와 세현의 목적이 다른 만큼 마찰은 필연적. 여기에 ‘밀레니엄 걸즈’ 멤버들 각각의 사연, 필선에게 한눈에 반한 동현과 어릴 적부터 필선을 짝사랑했기에 동현을 견제하게 되는 골키퍼 치형(이정하), 동현과 세현이 전학 온 현대중앙고와 거제상고 사이 벌어지는 갈등, 거제 조선소의 노동 착취 한가운데 서 있는 필선의 아버지(현봉식) 이야기 등 영화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120분의 러닝타임 안에 다양한 이야기와 여러 장르의 혼합을 보여주려다 보니 영화가 다소 숨가쁘고 산만한 느낌은 있다. 그 산만한 양상을 지그시 누르는 건 그 시절 추억의 힘과 그를 최대한 상큼하고 발랄하게 구현하는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발맞춰 필선과 미나가 펌프 위를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순간부터 그 시절을 기억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디바의 ‘왜 불러’, 듀스의 ‘나를 돌아봐’, 김원준의 ‘쇼’, NRG의 ‘할 수 있어’, 터보의 ‘트위스트 킹’, 지니의 ‘뭐야 이건’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요 명곡들이 관객의 손끝 발끝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가 흥행한다면 싱어롱 상영관의 재관람 열풍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노래와 춤 외에도 바닥 다 청소하는 통 큰 힙합바지나 펌프, 삐삐, 다마고치 같은 시대의 소품들도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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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선은 꼭 혜리여야 했다는 박범수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그룹 걸스데이 출신 이혜리는 힙합 댄스와 치어리딩을 찰떡같이 소화하는 동시에 학교의 ‘통’으로 소녀들의 선망을 받는 멋진 날라리 필선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한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처럼 과거를 추억하게 만드는 캐릭터라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사전에 있었으나 기우였다. 자신의 꿈을 향해 매진하는 ‘걸크러시’ 매력의 필선에서 덕선의 모습은 전혀 겹쳐 보이지 않는다.


영화 ‘써니’처럼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청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도 ‘빅토리’의 특징. ‘땐뽀걸즈’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최종병기 앨리스’와 영화 ‘육사오’ 등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박세완이 이혜리와 함께 기가 막힌 호흡을 보여주고, ‘닥터 차정숙’을 거쳐 최근 종영한 ‘감사합니다’로 주연급으로 성장한 구구단 출신 조아람이 세현을 맡아 이제 그의 전매특허처럼 보이는 딱부러지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무빙’ ‘감사합니다’의 이정하와 축구선수 출신으로 자연스럽게 축구 유망주를 연기한 이찬형 외에도 ‘밀레니엄 걸즈’로 호흡을 맞추는 최지수, 백하이, 권유나, 염지영, 이한주, 박효은 등 신인 배우들의 풋풋한 매력이 화면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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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칠 만한 영화적 쾌감이나 재기 넘치는 이야기는 없다. 대신 ‘빅토리’가 선사하는 건 세기말과 2000년대 초를 지배했던 경쾌하고 밝은 감성이다. 이미 2000년에 치어리딩을 소재로 했던 할리우드 영화 ‘브링 잇 온’은 물론 오합지졸의 청춘들이 모여 함께 하모니를 이루고 그들의 노력과 에너지로 보는 이들의 활기를 불러 일으키는 내용이란 점에서 2000년대 초 일본영화 ‘워터뵈즈’ ‘스윙걸즈’ 같은 일련의 영화들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박세완이 출연하고 거제도를 배경으로 댄스 스포츠를 추는 여고생들을 그린 성장 드라마 ‘땐뽀걸즈’가 떠오를 수도 있다. 추억팔이와는 조금 다른, 청춘들의 밝은 에너지를 귀여워하고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빅토리’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겠다. 조금 아쉬운 건 웃음의 타율이다. 소소한 코미디를 곳곳에 던지는데, 타율이 생각보다 높진 않다. 기억에 남는 건 교장선생님(주진모)의 ‘수학 개그’ 정도?

1984년에 결성된 거제고교에서 결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치어리딩 팀 ‘새빛들’ 이야기를 모티로 한 ‘빅토리’는 신나고 경쾌한 춤사위로 모두에게 응원을 던진다. 경기력 최악인 만년 꼴찌 축구팀도, 하루하루 삶의 노고를 쌓는 시장통의 상인도, 병마와 싸우며 고통받는 병원의 환자도, 빨간 머리띠를 이마에 두르고 주말에 쉬게 해달라 부르짖는 조선소 파업 현장의 노동자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 누구도 응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감독의 바람처럼, ‘빅토리’가 응원이 필요한 이 시대에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8월 14일 개봉.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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