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이익 나눌 수 없다?…값싸게 상장폐지하는 알짜기업들

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2024.07.17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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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상장폐지 위해 공개매수 추진한 회사 리스트/그래픽=윤선정자발적상장폐지 위해 공개매수 추진한 회사 리스트/그래픽=윤선정


최근 상장기업들의 자발적상폐(상장폐지)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 실적과 재무구조가 탄탄한 우량기업들이 많은데, 공교롭게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후 상폐를 결정한 곳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업들이 상장폐지 과정에서 책정하는 기업가치가 낮아 소액주주들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공개매수를 통해 자발적상폐 절차를 밟고있거나 마친 기업은 신성통상 (2,175원 ▼30 -1.36%), 락앤락 (8,750원 0.00%), 제이시스메디칼 (12,900원 0.00%), 커넥트웨이브 (18,000원 0.00%), 티엘아이 (5,800원 ▼10 -0.17%), 대양제지, 쌍용씨앤이 등 7곳이다. 지난 2년간 자발적상폐 혹은 이를 추진했던 상장사들을 모두 합친 숫자에 맞먹는다.



자발적상폐를 택한 기업 숫자가 늘어나는 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무관하지 않다. 상장을 유지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조달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분·반기 보고서를 제출해야할 뿐 아니라 경영활동과 관련해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한다. 분기마다 회계감사를 위한 비용도 발생한다.

여기에 더해 올해 정부는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증시저평가) 해소를 목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며 상장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은 한층 더 강해졌다. 기업은 스스로 현황을 분석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했는지 여부를 주주에게 알려야한다. 소액주주들은 배당확대, 자사주소각, 기업 투명성 강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사모펀드를 포함해 대주주 지분이 높으면서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 사이에서 비상장사로 전환하는 게 대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증권사로 들어오는 공개매수에 관한 문의도 늘고 있다. 상장사가 자발적 상장폐지를 위해서는 코스피에서는 자사주를 제외하고 대주주가 95%의 지분을 코스닥에서는 90%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주주는 통상 증권사를 매개로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한다.

증권사에서 IB(기업은행)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올해 초 기업들이 공개매수에 대해 문의한 건수가 급격히 늘었다"며 "상장폐지 이후 인수금융 등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최근 신성통상은 소액주주의 주주환원 요구에 자발적상폐로 응답했다. 신성통상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80%에 달한다. 2020년 한·일 무역분쟁 당시 유니클로 대체재로 꼽히며 실적이 급격히 개선된 덕택에 회사가 보유한 순현금도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다.


배당과 직결되는 이익잉여금은 3000억원 수준으로 시가총액에 맞먹었으나 지난해 1주당 50원을 배당하는 데 그쳤다. 주주들의 불만이 커지자 신성통상은 지난달 21일 고점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진 2300원에 공개매수를 하겠다고 밝혔다. 신성통상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7배 수준이다.

락앤락, 쌍용씨앤이, 제이시스메디칼, 커넥트웨이브 등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회사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자발적상폐를 통해 소액주주들의 요구사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발적상폐는 주가가 하락하는 국면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향후 재상장도 불투명하다. 나무증권의 NH데이터에 따르면 신성통상의 평균매입단가는 공개매수가보다 높은 2690원이다. 락앤락 소액주주들은 공개매수가격이 낮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밸류업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주주가치제고에 관심이 없는 기업을 중심으로 자발적상폐 사례가 더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한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에서도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자발적상폐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사모펀드 외에도 대주주 지분이 높은 상장사에서 주주가치제고를 할 유인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자발적상폐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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