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본시장이 척박해질까 걱정이다

머니투데이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 2024.07.10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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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사진=대한상공회의소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사진=대한상공회의소


올해 7월 초까지 코스피 지수는 7.1% 상승해 대만(31.6%), 미국(16.8%), 일본(22.7%) 등보다 부진했다. 2022년 기준 가계자산 중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중은 64.4%(금융자산 35.6%)로 이웃나라 일본(비금융 37.0%, 금융 63.0%)과 확연히 비교된다. 자산구성의 불균형을 개선하고 기업 성장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시장의 역할을 제고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올해 2월부터 밸류업 정책을 예고하고 5월 시행했다. 상장사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공시하고 이행점검도 하자는 것이다. 자본시장 활성화 취지에는 당연히 동의하나, 구체적인 방안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문제 해결의 정공법이라기보다는 기업 부담을 늘려 오히려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금융소득이 늘어나면 다른 소득과 합산해 누진 과세하고, 장기보유해도 별도 세제혜택이 없는 반면 미국은 장기보유 주식의 경우 배당세율이 대폭 인하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장기·대량투자 유인이 없어 단타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세제에 관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외면한 채 기업에 짐을 지우는 새로운 갈라파고스 규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이다. 법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 용어는 간단히 말해 이사가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자기 자신보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의무를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 이익을 위해서까지 확대하자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나, 이사의 충실의무가 왜 회사 이익으로만 제한돼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주식회사의 주주는 한두 명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작년 말 주주는 467만 명인데 이들은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이를 모두 감안하면 이사는 사실상 아무런 의사결정도 할 수 없다. 이견을 다 조정해야 한다면 결국 이사회가 정치화되고 이사는 특정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처럼 일하게 된다. 안건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장기간 대치하게 될 수도 있다.

현행법상 주주보호 장치도 이미 충분하다. 합병 등의 의사결정에 반대하면 주주가 주식을 회사에 팔고 나갈 수도 있고, 합병 무효의 소도 제기할 수 있다. 또 특정 거래의 금지를 청구할 수도 있고, 이사 해임의 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이사들은 주주들로부터 손해배상청구소송이나 배임죄 고발 등을 당할 소지가 커진다. 이 때문에 신규 투자나 M&A(인수합병)를 과감히 추진하기보다 주주 눈치를 보며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경영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상장사의 52.9%가 상법 개정 시 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기업의 부담만 늘려 오히려 밸류업을 저해하고 자본시장을 더 척박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본시장에 자금 유입을 늘릴 방안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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