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도 콧대 낮췄다…불붙은 'P의 레이스', 반값 전기차 쏟아진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이세연 기자, 박미리 기자, 안정준 기자 2024.05.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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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탈 캐즘 로드맵 (下)

편집자주 전기차 시장의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 진입이 현실화했다. 완성차 업계의 생산 감축 후폭풍이 배터리 기업의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대중화 문턱에서 전기차 시장이 주저앉으면, 미래 먹거리로 여겨 온 배터리의 밸류체인이 붕괴한다. '죽음의 골짜기'에 직면한 배터리 업계의 현실을 들여다 본다.

"내년 저가 전기차" 머스크도 'P의 레이스'…중국 '치킨게임' 시작하나
중저가 전기차/그래픽=김다나중저가 전기차/그래픽=김다나


"2025년 초에는 저가 전기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가 지난달 컨콜에서 한 말이다. 시장에 팽배했던 약 3400만원 짜리 저가 전기차 '모델2' 생산 포기설을 일축했다. 오히려 2025년 하반기에 맞춰져 있던 '모델2' 생산 일정을 앞으로 당겼다. 업계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본다. 캐즘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지난 1분기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 감소를 겪었고, 순이익은 11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 났다.



캐즘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개념은 "전기차에 관심 있는 얼리어답터는 거의 구매를 완료했다"에 가깝다. 보조금을 받아도 최소 4000만~5000만원에 달하는 수준의 돈을 쓰며 전기차를 구입할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에 따른 불경기까지 겹쳤다.

상황이 이러니 캐즘 극복의 포커스는 '3000만원대 전기차'의 보급에 맞춰지고 있다. 이른바 'P(price, 가격)의 레이스'다. 보조금이 없어도 보통 사람들이 선뜻 구매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차량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P의 레이스'는 이미 시작됐다.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해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GM, 포드 등도 중저가 라인업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포문은 중국 기업들이 열었다. 포화 상태인 중국 국내 시장을 벗어나 유럽 등에 저가 전기차를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중이다. BYD의 경우 지난 2월 기준 중국 제외 글로벌 판매가 전년비 235% 증가했을 정도다. IT 기업인 화웨이, 샤오미 등도 '반값 전기차'를 표방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크라쿠프(폴란드)=AP/뉴시스]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2024.03.06. /사진=유세진[크라쿠프(폴란드)=AP/뉴시스]일론 머스크 테슬라 및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2024.03.06. /사진=유세진
핵심은 배터리 가격이다. 배터리가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삼원계(NCM·NCA)에 비해 주행거리 등 성능이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이 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채택이 불가피하다. 실제 중국 전기차들은 CATL과 BYD 등이 만든 값싼 LFP 배터리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국내 기업들도 'P의 레이스'에 합류하고 있다 현대차는 '코나 일렉트릭', 기아는 '레이 EV' 및 '니로 EV'에 LFP 배터리를 장착했고 후속 중저가 모델 출시 계획을 잡고 있다. 부품과 제어기 등의 통합 및 내재화, 설계·공정의 혁신 등도 추진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하반기 LFP 배터리 양산에 나설 계획을 세웠고, 리튬망간인산철(LMFP) 등 미들급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온은 '가격 경쟁력'을 최우선 가치로 잡고 LFP 배터리의 2026년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SDI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을 시작으로 LFP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만큼 저렴해지는 '배터리 프라이스 패러티(Price Parity)'가 와야 캐즘의 끝이 보일 것으로 내다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신차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완전히 돌아서는 구입패턴을 만드는 데는 최소 3~4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다만 초기 구매비용이 같아지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이호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장은 "리튬 등 소재 가격이 많이 내려오긴 했지만, 2026년까지도 초기 구매가격이 (내연기관차와) 동등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전기차 가격이 내려온다면 총 소요 비용을 고려했을 때 일반적인 주행거리 운전자에도 메리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P의 레이스' 과열에 따른 치킨게임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공급망에서 얼마만큼의 가격 인하를 용인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차량 가격 인하라면 이는 분명 완성차 기업들의 마진 훼손을 전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차피 맞아야 할 비…하이브리드·ESS '우산 전략' 가동
현대차·기아 국내외 하이브리드 판매량 추이/그래픽=조수아현대차·기아 국내외 하이브리드 판매량 추이/그래픽=조수아
전기차 가격을 낮추고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노력이 수반되도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은 당분간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밸류체인 전반의 업황 부진은 '피할 수 없는 비'인 셈이다. 업계는 이에 따른 실적 둔화를 최소화할 '플랜 B' 구축에 나섰다. 완성차 업계는 하이브리드차를 캐즘의 징검다리로 삼는다. 배터리업계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시장 공략에 나선다.

7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현대차의 국내외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9만7734대로 17% 늘었으며 기아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같은 기간 30.7% 증가한 9만3000대로 집계됐다. 미국 시장에선 현대차, 기아 뿐 아니라 주요 완성차 브랜드의 하이브리드차 전체 판매량이 급증했다. 1분기 미국에서 전년대비 하이브리드차 판매 증가폭은 45%였다. 같은 기간 전기차 판매는 2.7% 늘어나는데 그쳤다.

업계에선 전기차 캐즘을 하이브리드차 약진 배경 중 하나로 보고있다. 올해부터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자 친환경차 수요 일부가 하이브리드차로 쏠렸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 구동계에 전기 모터와 소형 배터리를 추가로 장착해 제조된다. 연비가 높고 친환경적인데다 전기차의 단점인 충전과 주행거리 문제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기차 캐즘 기간의 대안이 될 잠재력이 있는 셈이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하이브리드차 판매에 힘을 준다는 계획이다. 당초 전기차 전용공장으로 계획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에선 하이브리드차도 함께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하이브리드 생산 플랫폼 개발에도 나섰다. 현대차는 새로운 플랫폼을 내년 초 출시하는 팰리세이드 등에 적용한다. 기아도 스포티지와 쏘렌토 하이브리드 등에 이 플랫폼을 적용한다.

국내 배터리 3사, ESS용 배터리 투자·개발 현황/그래픽=조수아국내 배터리 3사, ESS용 배터리 투자·개발 현황/그래픽=조수아
배터리업계는 ESS용 배터리 시장을 전기차 캐즘의 대안으로 본다. ESS는 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로 대용량 배터리가 장착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보완해주는 장치로, 재생에너지 설치가 늘어나는 미국 등에서 수요가 크게 증가한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계가 상대적으로 손쉽게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시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ESS 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이다. LG엔솔은 지난 달 미국 애리조나주에 연산 17GWh 규모의 ESS 배터리 전용 공장을 착공했다. 이 공장이 완공되는 2026년엔 최근 LG엔솔 ESS 배터리 전체 출하량의 두 배 이상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공장에선 LG엔솔이 독자 개발한 ESS용 파우치형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생산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장속도가 빠른 미국 ESS 배터리 시장에서 LFP 배터리를 앞세워 진검승부를 벌이겠단 의지다. 북미 ESS 시장 규모는 2022년 12GWh에서 2030년 103GWh까지 약 10배 커질 전망이다. 이 밖에 삼성SDI도 북미에서 ESS용 LFP배터리 양산을 준비하고 있으며 SK온도 ESS용 LFP 배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다만, ESS 배터리 역시 전기차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산과의 경쟁이 관건이다. 특히 미국 ESS 시장의 경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외국우려기업(FEOC)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중국산 배터리가 별다른 제약 없이 유통되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계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LIB ESS 시장 추이/그래픽=조수아LIB ESS 시장 추이/그래픽=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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