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새 가격 2배 뛰었다…'취미가 돈이 되네' 어른이들 우르르[르포]

머니투데이 오석진 기자 2024.05.08 06:00
글자크기

[현물의 시대⑤]서초구 국제전자센터 피규어 판매장…소비자들 "단종 제품은 부르는 게 값"

편집자주 물가상승률이 장기간 높게 유지되면서 현물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금과 달러, 원자재, 사치품에 투자하는 '현물족'을 만나봤다.

6일 서울 서초구 피규어 판매장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신상 피규어가 빼곡히 진열돼있다/사진=오석진 기자6일 서울 서초구 피규어 판매장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신상 피규어가 빼곡히 진열돼있다/사진=오석진 기자


# "10년 장기로 보면 수익률 400%인 제품들이 많고요, 1년에 200% 오르는 것도 있습니다."

6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 9층에 위치한 피규어 판매장. 이색 피규어를 구경하려 온 연인들부터 '한정판'을 찾는 손님들로 붐볐다. '어른이'(어른과 어린이 합성어)들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각국 유명 피규어들이 매장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했다.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원피스 △드래곤볼 △주술회전 △원펀치맨 △슬램덩크 속 피규어가 맨 앞열에서 어른이들을 맞았다. 미국 마블 유니버스 캐릭터인 △아이언맨 △블랙팬서 △닥터 스트레인지 인기도 여전했다. '무조건 5000원'이라는 소형 피규어부터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피규어가 가득했다.

'버츄얼 유튜버'(유튜브를 진행하는 캐릭터) 그룹 홀로라이브(hololive)의 '가우르 구라'는 16만원에 판매 중이었다. 작년초 첫 출시 때보다 가격이 2배로 뛰었다. 소녀 캐릭터에 상어 이미지를 더해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피규어 매장 종업원 A씨는 "지금은 손님이 많지 않은 편"이라며 "발 디딜 틈도 없을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A씨는 "요즘은 버츄얼 유튜버 피규어나 '블루 아카이브' 류의 게임 캐릭터 피규어의 인기가 많다"며 "일본은 한국보다 가격이 더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새에 가격이 2배가 올랐다는 버츄얼 유튜버 '홀로라이브'의 가우르 구라 캐릭터 피규어/사진=오석진 기자1년새에 가격이 2배가 올랐다는 버츄얼 유튜버 '홀로라이브'의 가우르 구라 캐릭터 피규어/사진=오석진 기자
이같이 피규어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피규어 재테크족'도 늘어난다. 20대 여성 윤모씨는 "9년전 구매한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5주년 기념 피규어 가격이 지금 4~5배가 됐다"라고 말했다. 실제 당시 10만원에 거래되던 해당 피규어는 현재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40만원을 호가한다.

윤씨는 "가격을 보자마자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주변에서 '더 오를 것 같으니 팔지 말아라'는 조언을 듣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20대 남성 신모씨는 "2019년쯤에 수집 목적으로 2003년 단종된 피규어 '마텔'을 구매했는데 2022년 곧 재생산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팔아 이득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종 상품은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만 아니라면 정말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실제 국내 키덜트 제품 시장은 짧은 시간에 급격히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원에서 2020년 1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향후 최대 11조원까지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초구 피규어매장 모습/사진=오석진 기자서초구 피규어매장 모습/사진=오석진 기자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피규어의 대중적 인지도가 투자 가치를 담보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특정 피규어가 인기를 얻으면 재발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곧 가격 경쟁력 하락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피규어 수집가 20대 남성 B씨는 "'하츠네미쿠 넨도로이드' 상품은 처음 나올 땐 마니아들이 사재기 해서 정가보다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기가 워낙 좋아 출시 후 1년 뒤 재발매를 해서 가격이 내려갔다"고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피규어 중고 거래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더해지면서 피규어가 재테크 수단으로도 주목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고 거래 시장이 탄력을 받으면 언제든 팔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며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쉽게 손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