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보조금 9조' 파격 지원…미국서 반도체 선순환 구축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4.04.1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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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확대→수주 증가→대형 투자
테일러 공장 공사 가속도…4나노 공정 앞당겨질듯
엔비디아·애플 등 빅테크 고객과 물리적 거리 밀착

/그래픽 = 최헌정 디자인기자/그래픽 = 최헌정 디자인기자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에 지급 하기로 한 9조원 가량의 보조금은 당초 시장 전망치인 20억~30억 달러를 2배 이상 상회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보조금으로 팹(공장) 건설과 추가 투자에 대한 비용 부담을 덜게 됐다. 엔비디아와 애플, AMD 등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와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업 확장의 탄력을 받게 됐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의 보조금은 인텔(85억달러)이나 TSMC(66억달러)보다는 적지만, 투자 금액 대비 비율로 따지면 가장 높다. 경쟁 기업보다 적은 투자 금액에도 비슷한 규모의 보조금을 받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많은 양의 보조금은 삼성전자의 기술 경쟁력과 사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미국 반도체 산업에 큰 이익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인텔(110억 달러), TSMC(50억 달러)와 달리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저리 대출 지원은 받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 약 79조6900억원에 달하는 현금성자산을 보유한데다 올해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만큼 충분한 투자 여력을 갖췄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대출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은 진행 중인 평택 투자는 물론 미국 투자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보조금을 마중물로 미국 사업 확장에 탄력을 붙이겠다는 구상이다. 2022년 착공한 테일러 공장의 진행률은 지난해 말 기준 59.7%다. 인플레이션으로 비용 부담이 늘면서 적기 준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보조금을 수령하면 지연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될 경우 테일러 공장에 도입할 4나노 공정의 양산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공장 가동이 궤도에 오르면 주요 고객사와의 지리적 거리가 가까워진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CEO(최고경영자)가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난 메타나 엔비디아 등 빅테크 업체들은 물론 테슬라, 애플 등 세트(완성품) 업체들까지 모두 본사가 미국에 있다. 5G나 HPC(고성능컴퓨팅), AI(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도체업계는 보조금이 미국 거점을 확대하고, 기술 경쟁력을 더 끌어올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고대역폭메모리(HBM)나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 지능형 반도체(PIM) 등은 최근 미국에서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분야로, 거점 확대가 수주 증가-대형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도 최근 주주총회에서 "CXL과 PIM은 다양한 고객들과 협의하면서 실제 적용 등을 진행 중으로, 곧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한국-미국 '투트랙' 투자를 발판으로 최선단 공정 캐파(생산 능력) 확대에 적극 뛰어들 시기라고 판단한다. 삼성전자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DDR5, LPDDR5x, HBM3 등 고부가·고용량 제품의 수요가 가장 높은 시장"이라며 "평택-테일러 공장을 축으로 해 미국 시장의 수요에 적기 대응할 수 있도록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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