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팍팍해진 가계살림…여윳돈 50.8조원 줄었다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4.04.0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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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고금리 지속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된 가운데 경기부진까지 이어지면서 가계 여윳돈이 1년 새 50조원 넘게 줄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기업들은 자금 조달과 운용 규모를 줄이는 등 '긴축 경영' 모드로 들어갔다.

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자금 운용-자금 조달)은 158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209조원)보다 50조8000억원 줄었다.



순자금운용은 예금과 주식, 채권, 보험 등 자금운용액에서 금융기관 대출금과 같은 자금조달액을 뺀 금액으로 경제주체의 여유자금을 의미한다.

가계 순자금 운용액 감소는 가계 소득 증가세 둔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가계 소득 증가율은 전년 대비 2.8% 증가해 2022년(7.3%)보다 증가세가 크게 둔화했다.



정진우 한은 경제통계국 자금순환팀장은 "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을 가진 사람들의 이자비용이 많이 늘었고 전반적으로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전체적인 소득 증가율이 둔화된 것이 반영돼 가계 여유자금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달액을 고려하지 않은 가계 전체 자금운용 규모는 194조7000억원으로 1년 전(283조5000억원)보다 88조8000억원 감소했다. 2019년(181조6000억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작은 규모다.

자금 운용을 부문별로 살펴보면 예치금, 채권 등 모든 상품의 운용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특히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운용 규모는 -4조9000억원을 기록하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운용액이 음수라는 건 금융자산 처분액이 취득액보다 많았다는 의미다.


이밖에 △금융기관예치금(147조원→128조8000억원) △채권(34조5000억원→25조5000억원) △보험 및 연금준비금(65조1000억원→41조4000억원) 등도 운용액이 전년보다 줄었다.

고금리에 따라 가계의 자금조달도 급감했다. 가계 자금 조달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금융기관 차입(대출)은 2021년 190조3000억원에서 2022년 66조1000억원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29조6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정 팀장은 "주택담보대출이 꾸준히 증가한 반면 신용대출이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고 이에 더해 소규모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세도 전년에 비해 크게 둔화했다"고 밝혔다.

허리띠 졸라매기는 기업(비금융법인)과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기업 순자금 조달규모는109조6000억원으로 1년 전(198조1000억원)보다 88조5000억원 축소됐다. 자금 조달 방법 가운데 금융기관 차입이 208조5000억원에서 63조6000억원으로 급감했고 채권 발행도 55조3000억원에서 26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 금리 상승에 따른 자금조달비용 증가, 해외직접투자 축소, 매출 부진 등의 영향이다.

자금조달 규모 축소에 따라 기업 자금운용도 쪼그라들었다. 금융기관 예치금과 채권, 직접투자 등을 중심으로 247조9000억원에서 30조8000억원으로 1년 새 217조1000억원 축소됐다. 지난해 기업 자금운용 규모는 통계편제 이후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일반정부 역시 순자금조달 규모가 2022년 34조원에서 2023년 13조원으로 축소됐다. 정부 지출이 수입보다 더 크게 감소하면서 국채를 중심으로 순자금조달 규모가 줄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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