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녹음된 대화 다시 들으면 처벌받나요

머니투데이 김태형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2024.03.19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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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캠'이라 불리는 영상정보 처리기기를 설치하는 집이 늘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는데, 홈캠에 녹음된 대화를 재생해서 듣는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이 금지하는 '청취'일까?

법원이 내린 결론은, '청취'는 타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그 대화의 내용을 엿듣는 행위를 의미하고, 대화가 이미 종료된 상태에서 그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대법원 2024. 2. 29. 선고 2023도8603 판결).



먼저 '대화'의 의미가 문제되는데, 법원은 '원칙적으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이 육성으로 말을 주고받는 의사소통행위'가 대화이고, 의사소통행위가 종료되면 대화도 종료되므로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것은 '대화'의 청취가 아니라고 보았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청취'와 함께 '녹음'도 금지 및 처벌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녹음'을 금지하는 취지는 특정 시점에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를 실시간으로 녹음하는 것을 의미할 뿐 이미 종료된 대화를 재생한 뒤 이를 다시 녹음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므로, 같은 맥락에서 '청취'의 대상 역시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종료된 대화를 재생하여 듣는 것도 '청취'에 포함시키면 처벌 대상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위법하게 '녹음'을 한 사람이 다시 청취하는 행위는 녹음행위로 처벌하면 되고, 적법한 녹음 주체나 제3자가 그 녹음물을 청취하거나 위법한 녹음물을 녹음 주체 외의 제3자가 청취하는 경우까지 금지하는 것은 행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수긍할 수 있는데, 어쩌다 자기 집에 설치한 홈캠에 녹음된 내용을 들었다는 이유로 이런 판결까지 나오게 된 것일까? 피고인은 배우자와 함께 거주하는 아파트 거실에 녹음기능이 있는 홈캠을 설치했고, 거실에서 배우자와 그 부모, 동생이 대화하는 내용이 자동 녹음되었는데,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 대화를 청취하고 그 내용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기소가 되었다.

피고인이 배우자 몰래 어떤 의도를 가지고 홈캠을 설치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배우자 가족들의 녹음된 대화를 듣게 된 것인지, 어떤 대화 내용이길래 부부 사이에 고소까지 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가정 내에서 일어난 일로 형사분쟁까지 발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기술의 발달로 음성이나 영상을 기록하여 저장하는 행위는 점점 더 쉬워질 것이고, 법적 분쟁에서 자신을 지키고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증거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증거수집의 대상과 공간도 점점 확대될 것이다. 법적 다툼에서 증거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증거를 확보하기 쉬워지면서 법정 싸움이 양산되고 확대되는 것은 아닐까? 증거가 필요한 이유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이 진실을 밝히지 않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있음을 대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이미 신뢰관계를 해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부작용을 막으려면 일단은 상대방을 믿어야 하는데, 대화나 영상은 그 성질상 사후에 증거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불법이든 합법이든 녹취나 촬영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답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이다.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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