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브, 현실 세계로 침투한 버추얼 아이돌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3.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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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블래스트/사진=블래스트


지난 9일 MBC '쇼! 음악중심' 1위는 'WAY 4 LUV'(웨이 포 러브)를 부른 플레이브에게 돌아갔다. 앞선 6일 MBC M '쇼! 챔피언'에서 데뷔 첫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던 플레이브는 지상파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뚜렷한 상승세를 보여줬다. 르세라핌, 비비 등 치열한 경쟁자를 이겨냈다는 점 역시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들의 1위로 K팝에는 또 하나의 기록이 세워졌다. 버추얼 아이돌이 역사상 최초로 음악방송 정상에 올랐다는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콘셉트가 누군가에게는 낯설 수 있다. 누군가는 실재하지 않는 아이돌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현상은 실제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현실이다.



2023년 3월 12일 싱글 'ASTERUM'으로 데뷔한 플레이브는 하민, 노아, 예준, 밤비, 은호로 구성된 5인조 보이그룹이다. 그룹명은 영단어 'Play'와 꿈을 뜻하는 프랑스어 'Rêve'의 합성어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세로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 창작 등 음반 제작과 무대 활동에 필요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5명의 멤버가 만드는 자체 제작돌이기도 하다.

이제 갓 1년을 넘겼지만, 이들을 향한 인기는 뜨겁다. 지난 8월 발매된 미니 1집 'Asterum : The Shape of Things to Come'은 초동 판매량 20만 장을 넘겼다. 'WAY 4 LUV'가 수록된 'ASTERUM : 134-1'은 초동 판매량이 56만 장을 넘겼다. 데뷔 앨범의 초동 판매량이 2만 7000 장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1년 동안 이룬 성장세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음반 판매량뿐만 아니라 음원 차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매한 싱글 '메리 플리스마스'는 멜론 HOT 100 1위, TOP 100 7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니 1집의 타이틀곡 '여섯 번째 여름'은 지난해 데뷔한 신인그룹의 노래 중 멜론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재생된 곡으로 꼽히기도 했다.

/사진=블래스트/사진=블래스트
플레이브의 이 같은 성적은 버추얼 아이돌에 대한 단순한 관심을 가진 대중보다는 플레이브를 아이돌로 여기며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팬덤의 공이 크다. 21세기는 개인의 시대가 아닌 팬덤의 시대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로 팬덤은 하나의 현상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버추얼 아이돌이 팬덤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이미 가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문을 가져야 할 건 플레이브가 어떻게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냐는 것이다. 이는 플리(플레이브 팬덤)는 왜 열렬히 플레이브를 지지하느냐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플레이브는 K팝 팬덤이 가장 중시하는 소통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다양한 '자컨'(자체 콘텐츠)은 물론, 라이브도 꾸준히 진행하며 실시간으로 라디오에 출연하기도 한다. 단순히 음악을 넘어 그 이상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K팝 팬들에게 풍부한 덕질 거리는 입덕하기에 첫 번째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남자 아이돌이라면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병역을 비롯해 열애설, 사건사고 등의 이슈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플레이브에게 입덕하는 이유다. 가상 세계의 플레이브는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 열애설에 휩싸일 걱정도 없고 마약이나 음주 운전 같은 사건사고를 일으킬 가능성도 물론 없다. K팝 팬들은 대부분 열렬하게 아티스트를 소비한다. 해당 아티스트가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을 때 단순히 '탈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추억마저 훼손받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브는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롭다.

이와 맞물리는 것이 코로나19로 인한 팬덤 문화의 변화다. 대면 행사가 제한된 코로나19 기간, 엔터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비대면 콘텐츠를 만들었다. 영통 팬싸, 온라인 콘서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면서 비대면으로 아티스트와 소통하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됐다. 온라인으로 주로 본다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든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버추얼 캐릭터든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2000년대 초중반 아이돌을 떠올리게하는 음악에 매료됐을 수도 있고, 버추얼 캐릭터에 대해 거부감이 없던 애니메이션, 게임, 버추얼 유튜버 팬층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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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플레이브가 앞으로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다른 아이돌처럼 팬덤을 확보한 이후에는 대중성에도 초점을 둬야 한다. 플레이브는 데뷔 1주년을 맞아 오는 17일까지 여의도 더현대 서울 5층 에픽서울에서 팝업 스토어를 개최한다. 플레이브의 정체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알려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이보다 중요한 건 '본체'와의 구분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플레이브 뒤에는 목소리를 내고 춤을 추는 실제 사람이 존재한다. 뒤에 자리한 본체를 향한 관심도가 커지고 정체가 드러날수록 화면 앞에 있는 플레이브를 향한 관심은 식을수 밖에 없다. 플레이브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블래스트 이성구 대표는 "펭수 뒤에 어떤 분이 있는지 아는 분도 계시지만 그걸로 IP를 소비하지 않는다. 우리도 실연자가 있는 게 맞다. 하지만 이분들을 자꾸 파헤치는 쪽으로 IP가 소비된다면 우리가 생각한 쪽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12일에는 "악성 댓글과 아티스트 신상 공개 행위, 근거 없는 루머 유포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으며 플레이브 및 당사에 관한 근거 없는 루머를 유포한 행위자에 대해 법적 조치를 완료했다"고 보다 적극적인 조치에 나섰다. '신상 공개 행위'에 대해 악성 댓글과 루머와 같이 선처 없는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건 그만큼 본체과 플레이브를 구별하겠다는 의도다.

플레이브는 오는 4월 13일과 14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번째 팬 콘서트 'Hello, Asterum'을 개최한다. 새로운 역사를 쓰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플레이브가 앞으로 또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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