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대표성 없어" vs "전공의 스승은 우리" 최후통첩 앞 의사집단 파열음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구단비 기자 2024.02.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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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정심교 기자/사진=뉴스1, 정심교 기자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갈등이 극에 치달은 가운데 의사집단에서 또다른 '중재자'가 등장했다. 서울의대교수협의회는 지난 17일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 소속 교수로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한 데 이어, 23일 정진행(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 비대위원장과 보건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이 23일 저녁 2시간가량 만나 "비대위 규모를 전국으로 확대 재편해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 역할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어 이 비대위와 전공의·의대생 등 80여 명은 26일 서울대 의과대학 행정관에서 긴급회의를 진행하며 "정부의 대책에 무조건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확한 원인부터 진단한 후 '치료법'을 내놓겠다"고 의견을 조율했다. 또 이들은 "새로운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정부와 원점에서 논의하자"고도 했다. 지금까지 '대한의사협회'가 의사집단의 대표로 나서왔지만, 판을 바꿔 의대교수들과 의협을 포함한 보건의료전문가가 모인 새 협의체를 꾸리고 4월 총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정부와 대화하자는 것이다.



정진행 비대위원장은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누가 대표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도 "전공의·의대생 소속이 대학이다. 그들을 지도하는 게 의협인가? 대학교수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우리 교수들의 역할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지도하는 것이므로, (학생들이 이렇게 단체로 사직·휴학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하다"라고도 했다.

전공의 대규모 이탈 사태가 7일 차로 접어든 26일 오전, 서울대병원 본원 앞에 놓인 휠체어들이 멈춰서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전공의 대규모 이탈 사태가 7일 차로 접어든 26일 오전, 서울대병원 본원 앞에 놓인 휠체어들이 멈춰서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하지만 의협 비대위는 정진행 위원장에 대해 '(정부와 대화할) 대표자 자격은 있냐'고 반박했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26일 "이분(정진행 위원장)의 발언과 행보에 대해 그분이 소속된 대학 교수 상당수가 동의하지 않는데도, 마치 그 대학 교수들도 같은 생각인 것마냥 오해받아 힘들어한다"며 "그래서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았겠느냐"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정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주수호 위원장은 의협을 대화 상대자로 인식하지 않는 듯한 정부의 발언에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날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중대본 브리핑에서 "법적으로는 의사협회가 의사 전체를 대변하는 구조로 설정돼 있는데, 의협 구조나 여러 가지 의사결정 구조, 집행부의 구성 등을 보면 개원가 중심으로 돼 있다"며 "의료계는 전체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대표성 있는 구성원을 제안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 위원장은 "정부는 의협 비대위가 의사의 일부(개원의) 단체인 것처럼 말하며 장난질 치는데, 그런 식이면 정부와의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그는 "의대 교수들도 의협 비대위와 의협 소속 회원"이라며 "정부야말로 극히 일부의 의사들이 의협 비대위 자리를 차고앉아 의사들을 선동하는 것 아니냐며 갈라치기고 치졸한 짓"이라고 비난했다.

의협의 이 같은 '견제'는 정부를 압박할 동력원을 잃어버릴 우려에서 나온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사들이 집단 진료 거부에 나섰을 당시에도 전공의 휴진 비율은 70~80%대였지만 의원급 의료기관의 휴진율은 파업 첫날 10.8%, 이튿날 8.9%, 마지막 날 6.5%에 불과했다.


만약 전공의가 복지부와 일부 교수들의 설득에 복귀한다면 의협 입장에선 정부와의 대화 상대자에서 점차 배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의협 비대위 회의에서 주수호 위원장은 "일부 교수의 말이 서울의대 전체 의견인지 개인의 의견인지 구별했으면 한다"며 집단 사직에 동참한 전공의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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