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준 나쁜 부모" 이름 밝혀도 '버티기'…다른 나라는 달랐다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김지현 기자, 기성훈 기자 2024.02.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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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배드 페어런츠', 이제 국가가 나선다 (下)

편집자주 아이는 돈 없이 키울 수 없다. 하지만 갈라선 뒤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른바 '나쁜 부모들'(bad parents, 배드 페어런츠)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대준 뒤 비양육 부모에게서 받아내는 방안이 추진된다. 대선 때 약속을 지키겠단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다.

"양육비 연체=세금 체납", 이자까지 다 받아내는 국가들
-양육 선진국들은?

[수원=뉴시스] 김종택 기자 = 지난달 19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메쎄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유아교육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육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4.01.19.[수원=뉴시스] 김종택 기자 = 지난달 19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메쎄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유아교육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다양한 육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4.01.19.


"국가가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양육비를 성공적으로 회수하면 향후 해당 아동이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지급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독일 가족·노인·여성·청년부의 '양육비 지급 설명서')



해외 '양육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양육비 대지급을 시행해 양육비 회피가 애초에 불가능한 사회문화를 만들고 있다. 양육비 채무가 국가에 대한 채무로 이전되면서 국가가 부모 대신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양육비 채무를 징수하고 있는 것. 이들 국가는 세금으로 양육비를 대신 지급한 후엔 개인의 책임 회피로 다른 국민이 부담을 떠안지 않게 채무자의 모든 자산을 추심해 상환하고 있다.

독일은 1980년 1월부터 양육비대지급법을 통해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지 못하거나 양육비가 선지급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국가가 양육비를 대신 한부모에게 지급하고 있다. 독일 전역의 수당 대지급 사무소에 우편 혹은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고 △0~5세 아동에 월 187유로(26만7600원) △6~12세 252유로 △12~17세엔 338유로가 지급된다. 양육비를 대지급한 후엔 청구권이 국가로 이전되는데 채무자는 회수와 관련된 국가의 모든 정보 요청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



스웨덴에서는 1996년부터 양육비 지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사회보험청이 대신 양육지원금을 대지급한다. 특히 홀로 자녀를 입양하거나 보조생식기술을 통해 출산하는 등 양육비를 지급할 부모 한쪽이 없어도 양육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가 순수하게 지원하는 셈이다. 온라인 신청서를 제출하면 6주 이내에 대지급 여부가 결정되고 10일 이내 자녀 연령에 따라 월 1673~2223스웨덴 크로나(21만1500원~28만원)가 지급된다.

스웨덴 역시 사회보험청의 양육지원금 지급 결정 즉시 양육비 채무 부모의 상환 의무가 발생하는데, 특이한 점은 최소 12개월 동안은 양육비 채무 부모가 사회보험청에 '적시에' 상환해야 국가가 대지급을 중단한다는 점이다. 양육비를 1~2회만 지급한 후 또 지급하지 않을 우려가 있는 만큼 국가가 최소 1년은 직접 지켜보고 나서야 양육비 채무 부모가 양육 부모에게 양육비를 직접 지급할 수 있게 제도화한 것.

핀란드도 2008년부터 아동양육비 지원법을 통해 사회보험기관인 켈라(Kela)가 대신 양육비를 선지급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스웨덴처럼 아동에 대한 양육비를 지급할 부모가 아예 없는 경우에도 양육비를 지급한다. 동성부부 사이 출생한 아동이 부모와 법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친모의 여성파트너가 아동을 입양한 상태가 아니어도 양육비가 지급될 수 있다. 켈라의 기준 양육비는 월 210유로(30만원)이며 온라인으로 법원의 양육비 지급 결정문을 첨부하면 된다.


핀란드의 켈라는 추후 체납된 양육비뿐 아니라 연체 이자까지 회수한다. 매월 지급해야 하는 미래의 양육비도 회수 대상이 된다. 지급된 양육비에 대한 권리는 핀란드 국가연금기관으로 이관되며 정해진 기한 내에 미지급된 양육비를 내지 않으면 즉시 강제이행을 통해 회수한다. 다른 채무와 달리 아동 양육비는 최우선 변제 채무로 분류되기 때문에 상당한 사유가 아닌 한 압류 절차가 지연되는 일은 없다.

양육비 안주면 명단공개·출국금지...'나쁜 부모들' 페널티 줬지만...

"양육비 안준 나쁜 부모" 이름 밝혀도 '버티기'…다른 나라는 달랐다
여성가족부는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는 한편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등의 대책을 고심해왔다. 그러나 제재조치의 경우 실효성이 높지 않고, 긴급지원 기간도 최대 1년이라 부족하단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14일 여가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을 받은 한부모 가정의 자녀는 총 3146명이다. 2015년 79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953명까지 12배가 늘었다. 지원금 규모도 6200만원에서 15억4700만원으로 증가했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은 중위소득 75% 이하이면서 양육비 미지급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한부모 가정을 대상으로 한다. 자녀 1인당 월 20만원, 총 9개월간 이뤄진다.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 1회에 한해 3개월간 지원 기간이 연장된다. 긴급지원이 종료된 뒤엔 국세 체납처분 규정에 따라 해당 양육비를 징수하게 된다.

하지만 지원 기간이 최대 1년인 탓에 경제적 위기가 이어져도 추가로 양육비를 받을 방법이 없는데다 회수율도 낮은 편이다. 양육비 채무자가 경제력이 없거나, 재산을 은닉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2021년 7월부터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채무자의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어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 등 강력한 제재 카드도 꺼내 들었다. 그럼에도 지난해말 기준으로 제재조치를 받은 대상자 504명 가운데 양육비를 전부 지급한 경우는 23명(5%), 일부 지급한 채무자는 117명(23%)에 그쳤다. 영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실효성이 그다지 높지 않단 얘기다.

"양육비 안준 나쁜 부모" 이름 밝혀도 '버티기'…다른 나라는 달랐다
여가부 관계자는 "2015년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립한 후 접수된 사건 중 양육비 이행률은 42.8%로 낮은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아동의 안전한 양육환경 조성을 위해선 안정적인 양육비 지급이 필수적"이라며 "선지급제도가 좋은 대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도 지난해 6월 독일 출장 때 양육비 선지급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베를린 주의 가족·아동정책 등을 총괄하는 교육·청소년·가족부와 한부모가족협회 베를린 본부 등을 찾아 양육비 선지급제 정책과 운영 현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당시 김 장관은 "한국의 (한부모 가정) 양육비 이행률은 아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회수율'은 숙제였다. 선지급금 회수율이 약 17%에 그쳐서다. 여가부가 시행 중인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금도 마찬가지다. 그간 회수율은 총 청구금액 19억5900만원 중 3억100만원으로 15.3% 정도에 불과하다. 여가부는 지난해 긴급지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연구용역에 착수해 진행 중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금 회수율 제고 방안을 마련한 후 선지급제도 도입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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