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추석을 사흘 앞둔 26일 광주 북구 국공립 율곡어린이집에서 원아들이 전통문화체험 행사 일환으로 전통의상 패션쇼를 하고 있다. (사진=광주 북구 제공) 2023.09.25.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굴지의 모 대기업 계열사는 최근 사내 어린이집 확장을 놓고 관련 부서들 사이 간부회의에서 민망한 논쟁이 일었다. 회사 직원들은 다양한 복지제도 중 사내 어린이집을 최고봉으로 여긴다. 기존 어린이집이 포화 상태라 확장 여부를 논의하는데, 뜻밖에 직원 출산율이 높아져 휴직자가 늘 수 있다는 반발에 부딪혔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임직원은 "소속 부서마다 앞으로 애를 낳을 직원이 몇 명 정도 되느냐고 묻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며 "기업들이 사내 어린이집을 도입하면 둘째를 낳는 확률이 급격히 높아져 저출산을 해소할 수 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합계출산율이 1.3으로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0.8명)보다 확연히 높은 일본이 먼저 나섰다. 사내 어린이집 의무화보다 파격적이다. 육아 가정에 재택근무를 의무화한다. 일본 후생노동성 심의회는 지난 27일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해 육아와 개호(돌봄요양) 휴업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3세 미만 아동을 둔 사원의 재택 근무를 의무하는 내용이 골자다. 심의회는 내년도 정기국회에 해당 법안을 제출, 곧바로 시행할 계획이다.
육아휴직도 더 적극 장려한다. 현재 일본은 직원수 1000명 이상 기업에 한해 육아 휴직을 몇 명이나 사용하고 있는지 의무적으로 공표하는데, 이 기준을 사원 300명 초과 기업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를 통해 육아휴직 취득률 공표 의무 기업이 4000곳에서 1만8000곳으로 4배 이상 늘어날 예정이다.
우리는 어떤가.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대기업이 어린이집 운영(혹은 위탁) 의무를 이행강제금 (최대) 2억원으로 막을 수 있는 한 "벌금이 더 싸다"며 외면하는 기업이 사라질 리 없다. 육아인프라를 "소수의 운 좋은 사람이 누리는 복지"라고 믿는 한 한국은 소멸할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