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민원[우보세]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2023.12.19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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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핵심 단어다. 저출산은 아이들이 줄어드는 세상을 가리킨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면 모든 게 줄어든다. 축소사회라는 말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래서 모두가 저출산 상황을 우려한다. 대응에는 실패했다고 평가받지만,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하고 끊임없이 정책을 고민한다. 국민적 관심도 높다.

고령화의 또 다른 표현은 노인들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노인이 늘어나면 부양비가 증가한다. 이 역시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간과하는 게 있다. 바로 죽음이다. 고령화는 수많은 죽음을 이끈다. 일본에서는 이미 '다사(多死)사회'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응에 나서야 하지만,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린다. 국민적 관심도 낮다.



최근 한 달 새 죽음에 대한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대전과 경기 고양·파주를 다녀왔다. 이들 지역의 장사시설을 둘러보며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사회가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장시설만 해도 그렇다. 수도권은 화장대란의 일상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 지난달 3일차 화장률이 20%대로 떨어졌다.

유족들은 대부분 3일장을 원한다. 그런데 화장시설이 부족해 원하지 않는 4일장을 치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 등 수도권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지방의 화장시설이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화장 수요를 지방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간단치 않은 문제다. 주소지 경계를 넘어가면 화장 비용이 최대 10배까지 치솟는다.



고인과 유족의 주소지에서 10만원이면 할 수 있는 화장을, 100km 밖까지 이동해 1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경황이 없는 유족들에게 그런 번거로움까지 신경 쓰게 하는 건 우리 장례문화의 특성상 맞지 않는다. 지방도 안심할 수 없다. 수도권의 화장시설 부족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지방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화장시설 부족 상황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는 "민원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유족 입장에서는 장례를 여러번 치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두번의 불편을 덮고 만다. 민원이 모이지 않으니 공무원과 정치인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초고령화시대를 맞아 무연고사도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정부가 지난해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기 전까지 고독사와 무연고사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고독사와 무연고사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고독사는 임종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반면 무연고사는 시신을 거둘 연고자의 유무에 따라 분류한다.


무연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사망한다. 고독사와 무관하다. 무연고 사망자 중에서 실제로 연고자가 있는 경우가 70%에 달한다. 외면된 죽음이라 더 쓸쓸하다. 이들의 마지막 길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게 흔한 일이 돼버렸다. 연고자가 없으니 민원도 없다.

결혼식보다 장례식이 익숙해지는 세상이 시작됐지만 주변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우리가 몰랐던 죽음의 이야기들이 늘고 있다. 이제라도 죽음을 돌아보고 기억하며 민원을 모아야 할 때다.
죽음과 민원[우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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