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이장희 등 연예인 137명 검거…가요계 휩쓴 대마초 파동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3.12.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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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MBN 프로그램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사진=MBN 프로그램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


1975년 12월3일. 발아하던 우리 대중음악에 찬물을 끼얹은 일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노래 '그건 너'로 한창 주가를 끌어올린 이장희를 비롯해 가수 윤형주와 이종용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습관성의약품관리법)로 느닷없이 구속되면서 가요계에 찬 바람이 불어 닥쳤다.

경찰의 단속은 살벌했다. 이튿날 저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신중현과 가수 김추자가 구속됐으며, 가수 이수미, 김세환 등 굵직한 가수 대부분 하루가 멀다고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지금이야 대마초가 마약으로 분류되지만, 당시에는 '해피스모우크'로 불리며 유행으로 번진 히피 문화의 하나였다. 단속이 이뤄진 적도 없었다.

밴드 '더 맨'의 보컬 고(故) 박광수씨는 대마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길거리에 앉아서도 피웠다. 한번도 단속당한 적이 없다. 그게 망국적 연기일지 누가 알았겠나. '소주 한잔 하자'와 비슷하게 여겼다.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신중현도 "한창 사이키델릭 음악이 유행이어서 알아보려고 1968년쯤 6개월 동안 해봤다. 별 재미없어 끊었다. 나중에 한 후배가 '대마초 있냐'고 묻길래 '우리 집에 쌓아놨다'고 했다"며 대마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 음악인만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구속된 연예인만 120명…대통령은 "최고형 적용해라"
/사진=1975년 12월4일자 경향신문 갈무리/사진=1975년 12월4일자 경향신문 갈무리
경찰의 단속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먼저 구속된 가수가 고문에 못 이겨 함께 대마초를 피운 연예인을 불면, 경찰은 새끼줄에 꿰듯 엮어 넣었다. 당시 경찰에 붙잡힌 연예인 수만 137명이었다.

코미디언, 영화배우도 단속을 피하지는 못했다. 코미디언 이상해, 이상한, 배우 정미하, 영화감독 이장호도 경찰의 그물망에 잡혔다. '가왕' 조용필도 단속 2년 만인 1977년 '10여년 전 대마초를 흡연했다'는 첩보가 경찰에 흘러 들어가 고문까지 당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신중현은 "누구와 같이 피웠냐고 해서 사실대로 말했다. 예전에 히피족, 조지, 마이클, 닉과 피웠다고 했더니 미국인은 안된다며 나를 밧줄에 매달아 물에 넣었다. 죽을 것 같아 불러주는 대로 '맞다', '맞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조사가 끝나면 정신병원이나 구치소로 보내졌다. 벌금형을 받은 기타리스트 강근식은 서대문정신병원에 한달간 갇혀 있었고, 구속기소된 신중현, 박광수, 윤형주 등은 서대문구치소로 보내졌다.

검찰의 단속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976년 2월 "대마초 흡연은 망국적 행위이며 대마초 흡연자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최고형을 적용, 엄벌하라"는 지시에 더욱 힘을 얻었다.

보건사회부는 대마 관리법(훗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통합)을 제정, '대마초를 수출입, 매매, 수수, 흡연 또는 섭취하거나 소지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마련하기도 했다.

무대 잃은 가수들 "방송·공연 다 금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사법 처분이 끝이 아니었다. 1976년 1월29일 문화공보부는 구속됐던 연예인 명단을 작성해 한국연예협회에 강력한 제재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협회는 결국 연예인 54명을 제명하는 등 제재를 내렸다. 이에 따라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신중현 등이 모두 무대를 떠나면서, 이제 막 태동하던 국내 포크·록 음악이 철퇴를 맞게 됐다. 방송사에서는 금지곡이 너무 많아 방송에서 '틀 노래가 없다'는 하소연이 나오기도 했다.

벌의 경중을 떠나 박정희 정권이 끝난 1979년까지 4년 동안 이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자수해서 벌금만 낸 '어니언스' 임창제는 "방송이고 공연이고 다 금지였다. 나이트클럽에서도 안 받아줬다. 받아줘도 출연료가 그 전의 반토막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광수 역시 "그 뒤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며 "다 그만두고 고향에서 살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폐인 취급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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