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N 프로그램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
경찰의 단속은 살벌했다. 이튿날 저녁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신중현과 가수 김추자가 구속됐으며, 가수 이수미, 김세환 등 굵직한 가수 대부분 하루가 멀다고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밴드 '더 맨'의 보컬 고(故) 박광수씨는 대마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길거리에 앉아서도 피웠다. 한번도 단속당한 적이 없다. 그게 망국적 연기일지 누가 알았겠나. '소주 한잔 하자'와 비슷하게 여겼다.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구속된 연예인만 120명…대통령은 "최고형 적용해라"
/사진=1975년 12월4일자 경향신문 갈무리
코미디언, 영화배우도 단속을 피하지는 못했다. 코미디언 이상해, 이상한, 배우 정미하, 영화감독 이장호도 경찰의 그물망에 잡혔다. '가왕' 조용필도 단속 2년 만인 1977년 '10여년 전 대마초를 흡연했다'는 첩보가 경찰에 흘러 들어가 고문까지 당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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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은 "누구와 같이 피웠냐고 해서 사실대로 말했다. 예전에 히피족, 조지, 마이클, 닉과 피웠다고 했더니 미국인은 안된다며 나를 밧줄에 매달아 물에 넣었다. 죽을 것 같아 불러주는 대로 '맞다', '맞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조사가 끝나면 정신병원이나 구치소로 보내졌다. 벌금형을 받은 기타리스트 강근식은 서대문정신병원에 한달간 갇혀 있었고, 구속기소된 신중현, 박광수, 윤형주 등은 서대문구치소로 보내졌다.
검찰의 단속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1976년 2월 "대마초 흡연은 망국적 행위이며 대마초 흡연자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최고형을 적용, 엄벌하라"는 지시에 더욱 힘을 얻었다.
보건사회부는 대마 관리법(훗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통합)을 제정, '대마초를 수출입, 매매, 수수, 흡연 또는 섭취하거나 소지한 사람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마련하기도 했다.
무대 잃은 가수들 "방송·공연 다 금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협회는 결국 연예인 54명을 제명하는 등 제재를 내렸다. 이에 따라 이장희, 윤형주, 이종용, 신중현 등이 모두 무대를 떠나면서, 이제 막 태동하던 국내 포크·록 음악이 철퇴를 맞게 됐다. 방송사에서는 금지곡이 너무 많아 방송에서 '틀 노래가 없다'는 하소연이 나오기도 했다.
벌의 경중을 떠나 박정희 정권이 끝난 1979년까지 4년 동안 이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자수해서 벌금만 낸 '어니언스' 임창제는 "방송이고 공연이고 다 금지였다. 나이트클럽에서도 안 받아줬다. 받아줘도 출연료가 그 전의 반토막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광수 역시 "그 뒤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며 "다 그만두고 고향에서 살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폐인 취급을 당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