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원도 소용 없었다'…슈퍼컴 6호기, 네 번째 해외입찰

머니투데이 김인한 기자 2023.10.2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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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사업, 환율·GPU가격 폭등으로 '난항'
2000억원 규모 컴퓨터서버 외자구매, 세 차례 모두 '무응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 중인 국가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 사진=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운영 중인 국가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 사진=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슈퍼컴퓨터 6호기 시스템' 구축을 위해 네 번째 외자구매 입찰공고를 냈다. 이 공고는 약 2000억원 규모 슈퍼컴 6호기 컴퓨터서버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그동안 해외기업이 세 차례(6월·7월·9월) 모두 무(無)응찰한 데 따른 조치다. 내년까지 구축하려던 슈퍼컴 6호기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과학계에 따르면 KISTI는 지난 26일부터 내달 7일까지 조달청을 통해 '슈퍼컴 6호기 시스템 구축'을 위한 1940억원 규모 외자 입찰공고를 냈다. 외자 입찰공고는 국내에서 생산 또는 공급되지 않는 외국산제품을 구매하는 절차다. 국가 슈퍼컴에 들어가는 컴퓨터서버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고환율과 GPU(그래픽처리장치) 가격 급등 영향을 받고 있다.



슈퍼컴 6호기 컴퓨터서버는 1억4564만5646달러로 이번에 KISTI가 환산한 환율은 약 1940억원이다. 1차 입찰 마감일이었던 지난 7월26일 서울외환시장 기준 원/달러 환율은 1274.5원으로 마감했다. 당시 환율 기준 1억4564만5646달러는 약 1856억원이다. 반면 3차 입찰 마감일이었던 지난 26일 원/달러 환율은 1360원으로 마감했고 이는 1980억원 수준이다. 100억원 넘는 예산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인공지능) 초광풍으로 GPU 수요가 폭증했다. KISTI에 따르면 슈퍼컴 6호기 예비타당성조사 당시 책정했던 예산보다 현재 GPU 가격은 3배 이상 늘어났다. 슈퍼컴 6호기 구축 예산은 2929억5000만원으로, 이중 2000억원 이상이 장비 구축에 들어간다. 예산은 그대로인데 장비 구축 비용이 크게 늘고, 입찰에 참여하려는 기업이 없어 성능을 낮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3차 입찰 당시 KISTI는 2차 입찰 때보다 성능을 대폭 낮췄다. 슈퍼컴 6호기 운영 최적화를 위해 사전 도입하는 '파일럿 시스템' 저장 용량과 노드수 조건을 절반 수준으로 내렸다. 또 6호기 도입에 필요한 기술지원 전담 인력을 최소화했다. AI 모델 학습 등을 위한 부품은 선택사항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슈퍼컴퓨터 6호기 시스템 구축 관련 네 번째 외자구매 입찰 공고문. / 사진=조달청슈퍼컴퓨터 6호기 시스템 구축 관련 네 번째 외자구매 입찰 공고문. / 사진=조달청
'초당 60경번 연산' 슈퍼컴 6호기, 구축 필요성은
KISTI는 2018년 12월부터 슈퍼컴 5호기 누리온 서비스를 시작했다. 누리온은 25.7페타플롭스(PF)급이다. 1PF는 1초당 1000조번 연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누리온의 25.7PF는 70억명이 420년 계산할 양을 1시간에 처리하는 수준으로 결코 낮은 사양은 아니다.


하지만 누리온은 최근 1년 사용률이 평균 74%, 최대 90.1%에 도달해 과부하 상태다. 개인용 노트북이 장기간 사용하면 부팅 속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슈퍼컴도 지속 활용할수록 성능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예타를 거쳐 올해부터 2028년까지 초당 60경번 연산하는 600PF급 슈퍼컴 6호기를 구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6호기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해외기업이 없고, 기존 계획대로 성능을 유지하려면 예산을 더 받아야 하지만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여파로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KISTI 관계자는 "600PF급 성능을 낮출 일은 없을 것"이라며 "외부 상황을 탓하지 않고 내년 말 서비스 목표를 이뤄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편 미국 에너지부 산하 오크르지국립연구소는 1.1엑사플롭스(EF)급 슈퍼컴 '프런티어'(Frontier)를 개발했다. 초당 110경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다. 중국도 슈퍼컴 성능을 공개하지 않지만 이미 1EF급 슈퍼컴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이화학연구소(RIKEN)가 537PF급 슈퍼컴을 보유한 만큼 1EF급 슈퍼컴 도입은 시간문제다. 1EF급 슈퍼컴은 전 세계 80억명 인구가 45년 계산할 일을 1초에 계산할 수 있어 기존에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신약개발, 최적의 로켓부품 설계 등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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