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누티비 잡자 악질 변종 '우수수'…판치는 도둑시청에 28조 샜다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김승한 기자, 윤지혜 기자 2023.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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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콘텐츠 도둑들 (上)

편집자주 드라마, 웹툰, 웹소설 등 글로벌 시장을 휩쓰는 K-콘텐츠의 이면에는 이를 무단도용해 막대한 수익을 취하려는 불법유통업자들이 있다. 단속을 피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메뚜기식 영업을 하는 이들 때문에 창작자는 정당한 수익을 빼앗기고, 콘텐츠산업 생태계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불법 유통을 근절해 건강한 창작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난 돈 내고 못 봐" 더 독해졌다…누누티비 없애자 '후후티비' 우르르
-창작 의지 꺾는 콘텐츠 불법 유통, 연간 피해액만 28조원 추산

OTT 콘텐츠를 불법 유통하고 있는 후후티비. /사진=후후티비 캡처OTT 콘텐츠를 불법 유통하고 있는 후후티비. /사진=후후티비 캡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를 불법 다운로드해 서비스하던 '누누티비'가 사라진 사이 유사한 불법 사이트가 또다시 등장해 창작자들의 수익을 갉아먹고 있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웹툰과 웹소설 등 디지털 콘텐츠를 불법 유통하는 업체들은 단속에 걸리면 홈페이지 주소를 바꾸는, 과거 소라넷 방식의 '메뚜기 영업'으로 법망을 피하고 있다. 이들의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비용은 수십조원으로 추정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후후티비'라는 이름의 불법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드라마 불법 유통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차단 당한 '누누티비'를 거의 그대로 베낀 사이트다. 무빙, 마스크걸 등 최근 유료 OTT의 인기 시리즈를 무료로 제공한다.

당연히 불법 서비스다.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사업자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고 콘텐츠를 무단 도용해 서비스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이트를 찾아오는 이용자들을 상대로 불법 도박사이트, 성매매 중개 사이트 등의 광고를 내걸어 수익을 올린다.



콘텐츠 불법 유통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웹툰과 웹소설 등을 불법 유통하는 마루마루, 마나모아, 뉴토끼 같은 사이트들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방심위에서 1주일에 2차례씩 해당 불법 사이트들을 차단하지만, 이들은 사이트 주소만 바꾸는 식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후후티비는 방심위로부터 사이트가 차단되는 것에 대비해 사이트 하단에 '최신 주소 확인 방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또 사이트가 일시적으로 차단된 상태라 하더라도 VPN(가상사설망)을 통해 이 같은 콘텐츠를 불법으로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뉴토끼의 경우 VPN을 통하지 않고도 접속이 가능한 상태다.

미국 온라인트래픽 조사업체 시밀러웹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뉴토끼의 누적방문자는 380만여명이다. 여러 차례 차단을 거쳐 새로 생긴 주소를 찾은 이들만 집계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몇십배의 사람들이 불법 유통 콘텐츠를 이용하는 셈이다.


콘텐츠 불법 유통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 드라마 제작사, 웹툰·웹소설 창작자 등에게 돌아간다. 지난 7월 31일 국민의힘이 연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대책 민·당·정협의회'에 따르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가 끼친 피해액만 5조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유사 스트리밍 사이트와 웹툰·웹소설 불법 플랫폼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수십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민·당·정협의회에서 "2021년 기준 불법 복제물 이용률이 19.8%로 추산돼 콘텐츠 산업 매출액이 138조원임을 감안하면 약 28조원이 기업으로 가지 않고 있다"며 "K-콘텐츠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함께 고강도 압박을 할 수 있는 범정부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창작자들의 노력이 정당한 수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불법 유통업자들에게 새어 나간다면 이는 창작의지를 꺾고 관련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로 다가올 것"이라며 "불법 사이트 근절을 위해 보다 효과적이고 기민한 대책, 이러한 불법 콘텐츠 감상 역시 범죄 동조행위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후후티비의 새 주소 찾는 방법 안내 공지문. /사진=후후티비 캡처후후티비의 새 주소 찾는 방법 안내 공지문. /사진=후후티비 캡처
누누티비 없애도 '도둑시청' 여전…불법 사이트, 안 막나? 못 막나?
-방심위 인력 부족...심의도 '상시' 확대해야

후후티비 메인화면. /사진=후후티비 사이트 캡처후후티비 메인화면. /사진=후후티비 사이트 캡처
정부가 '누누티비' 사태 이후 강력 대응을 예고하며 불법 사이트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지금도 '후후티비' 등 유사 사이트가 성업 중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에 이어 웹툰, 웹소설까지 불법 사이트가 확산하는 가운데, 이를 모니터링할 인력과 심의 횟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주 2회 통신심의소위원회를 개최하고 불법 사이트 차단 건을 상정해 조처한다. 하지만 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1~2주가 소요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방심위는 지난 7월 발표에서 불법 사이트 접속차단 심의를 '상시'로 열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전자심의'가 도입되지 않아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전자심의가 도입되면 서면 의결이 가능해 불법사이트 차단에 속도를 낼 수 있다.

방심위의 심의 횟수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담당 인력이 모자라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현재 방심위 저작권 침해 불법사이트 모니터링 및 접속차단 인력은 기능직(계약직)을 포함해 4명 안팎에 불과하다. URL(인터넷주소)을 수시로 바꾸면서 운영하는 새로운 불법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실제 지난 4월 누누티비가 종료된 후 유사 사이트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최근엔 누누티비 운영 방식을 그대로 베낀 '후후티비' '티비몬'이라는 이름의 변종 스트리밍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OTT뿐 아니라 '마루마루'라는 불법 만화·소설 공유 사이트도 성행하고 있다. OTT로 시작된 불법 사이트가 이제는 불법 웹툰, 웹소설로 번지는 양상이다.

사실상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단속이 쉽지 않은 것도 불법사이트 '무한증식'의 원인으로 꼽힌다. 서버 자체를 압수할 수 없어 현재로선 방심위 심의를 통한 사이트 차단 조치밖에 방도가 없다. 운영자를 검거하거나 처벌도 쉽지 않다. 이에 따라 '해외에 서버를 두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근 생겨나는 모방 사이트들도 이 운영 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강력 대응에 나섰다. 지난 12일 통신사들과 협업해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저작권침해 의심 사이트를 자동으로 검색·대응하는 자동 탐지·채증(증거수집)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AI를 통해 OTT 원본과 불법사이트 콘텐츠를 대조해 불법콘텐츠를 선별하고, AI가 영상 섬네일 등 스크린샷으로 증거를 채집해 통신사에 전달하는 식이다.

OTT 콘텐츠의 경우 통신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차단 시스템을 만들고 있지만 불법 사이트가 웹툰이나 웹소설까지 확대되면서 민간기업 부담이 과도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정부 모니터링 기관의 단속 역량을 강화하거나 구두 심의만으로 즉시 단속할 수 있는 법령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콘텐츠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불법사이트를 모니터링·차단하는 소관부처는 사실상 방심위가 유일한데, 인력 상황 등을 고려하면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며 "단속 인력을 늘리고, 구두 심의로 즉시 조처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웹툰 공짜로 본다"…불법인데 틱톡·유튜브에 떡하니
-네·카, AI 및 잠입수사로 사전·사후대응 '총력전'

틱톡 웹툰 불법유통 계정.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틱톡 웹툰 불법유통 계정.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뉴토끼'·'북토끼' 등 불법 사이트를 넘어 틱톡·유튜브 등에서도 국내 웹툰·웹소설이 버젓이 불법 유통되고 있다. 이에 네이버(NAVER (187,300원 ▼1,200 -0.64%))와 카카오 (46,450원 ▼350 -0.75%)는 작품 속에 '지문' 같은 이용자 정보를 심어 불법 유통경로를 파악하고 비공개 커뮤니티에 잠입하는 등 창작자 저작권 보호 총력전에 나섰다.

25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글로벌 불법유통 대응 전담팀 P.CoK(이하 피콕)은 최근 숏폼(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 웹툰 10여개를 무단게재한 영어권 계정을 신고해 불법 콘텐츠를 삭제했다. 해당 계정은 팔로워만 5300명으로, 게시물별 최대 조회수가 약 100만회에 달했다. 7700명이 가입한 영어권 페이스북 비공개그룹에서도 9개 작품 270개 불법 게시글을 삭제했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스마트폰으로 웹툰 한 회차 전체를 스크롤 다운하며 영상을 녹화해 틱톡·유튜브에 올리는 사례가 많다"면서 "불법 사이트뿐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까지 모니터링하며 불법 유통 범위를 좁히고 있다"고 말했다.

피콕은 올 상반기에만 불법 웹툰·웹소설 1400만건을 삭제했다. 지난해 하반기보다 112% 증가했다. 자동화 솔루션으로 국내외 불법 사이트 감시를 넘어, 언어권별로 조사단을 직접 파견하거나 비공개 커뮤니티에 잠입하는 등 사후대응을 강화한 효과다. 이 속도라면 연내 2800만건 이상 삭제할 전망이다. 단속대상도 웹툰·웹소설 IP(지식재산권)를 무단 활용한 굿즈 등 2차 저작물로 확대했다.
누누티비 잡자 악질 변종 '우수수'…판치는 도둑시청에 28조 샜다
최신회차 공개 즉시 불법사이트行?…AI로 늦췄다

네이버웹툰은 AI 기반의 '툰레이더'가 파수꾼 역할을 한다. 웹툰 이미지에 보이지 않는 이용자 식별정보를 넣어 최초의 불법 유출자를 식별·차단한다. 이용자 패턴을 분석해 불법복제·공유 의심 계정을 사전에 감지, 선제적으로 조처한다. 덕분에 2017년 7월~2022년 12월 국내 불법 사이트 32개 중 31개, 해외 사이트 68개 중 42개가 웹툰 업로드를 중지하거나 테이크 다운(서버가 내려간 상태)됐다.

툰레이더의 강점은 웹툰 최신회차의 불법유통 시기를 늦춘다는 점이다. 네이버웹툰의 경우 미리보기로 공개되는 유료회차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전환되는 만큼 불법유통 시기를 늦출수록 창작자 수익을 보호할 수 있다.

이건웅 고려대 교수가 2021년 5월~올해 6월 분석한 결과 네이버웹툰은 최신회차 불법유통을 타사 대비 약 25일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타 플랫폼 웹툰은 공개 즉시 불법 사이트에 공유되지만, 네이버웹툰은 25일 후에나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네이버웹툰과 불법 사이트 간 최신회차도 평균 4회 차이났다. 웹툰이 주 1회 공개되는 점을 고려하면 불법 사이트에선 4주 뒤 최신화를 볼 수 있는 셈이다.

회원제로 웹툰 제목 바꿔본다…더 교묘해진 불법유통

/사진=네이버웹툰/사진=네이버웹툰
이런 노력에도 단속의 어려움은 점점 커진다. AI 번역 서비스 확산으로 한국어를 몰라도 손쉽게 불법 번역·유통에 참여할 수 있어서다. 회원제 커뮤니티에서 작품 제목 대신 은어를 쓰는 등 유통경로도 점점 고도화·음성화된다. 실제 웹툰 '끝이 아닌 시작'은 중화권에서 '세 살 때부터 왕이 되다'로 불법 유통됐고, 러시아·포르투갈 등 웹툰 불법 유통 국가도 확대되고 있다.

이에 저작권 인식개선 운동으로 합법적인 콘텐츠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이달부터 '저작권 보호 대국민 캠페인'에 나섰고, 카카오엔터는 지난 8월 글로벌 이용자 대상으로 X(옛 트위터)에서 공식 플랫폼 구매인증 캠페인(Show Me Where You Read)을 진행, 약 6만5000명의 참여를 끌어냈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글로벌 규모의 대대적인 캠페인으로 불법 이용자 양지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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