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선거를 앞두면 일손을 놓는 노조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2023.09.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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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전반에 추투(秋鬪)가 들불처럼 번진다. 창사 55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 전운이 드리운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차·현대제철·볼보건설기계 등에서 쟁의 절차 진행되거나 앞두고 있다. 통상 쟁의의 주된 이유는 처우다.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 폭과 회사가 이견을 보일 때 단체행동에 나선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파업의 전개 양상이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주요 대형사업장 노조 집행부 투표가 있기 때문이다. 새 집행부를 꾸린 포스코를 제외할 경우 최근 회사와 각을 세우는 주요 기업 노조 대부분이 11~12월 선거를 치른다. 대형 노조는 조합원 수만큼이나 예산도 상당하다. 관료사회처럼 직책·직급도 다양하다. 노조의 수장이 되면 예산과 자리를 좌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거전에 나선 인물은 소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뒤를 받친다.



임기 2년의 노조 집행부 선거는 계파 간 다툼 양상이 종종 벌어진다. 강성 계파가 집행부를 꾸리면 파업이 잦다. 온건 계파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를 과도한 파업을 비판하기도 한다. 온건 계파가 집행부가 되면 강성 계파가 공격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들 두 계파를 동시에 꾸짖으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다. 이렇게 2년을 보내며 다가오는 선거를 준비한다. 주도권을 쥔 집행부는 선거를 앞두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일종의 선거운동인 셈이다. 현실 정치의 축소판이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파업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만 허락되는 특권이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는 엄두도 못 낸다. 파업해도 주목받지 못하고 원동력도 금방 소진된다. 이들에게 최후의 수단은 파업이 아닌 사직서다. 여전히 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머문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노조가 회사와 접점을 모색하기보다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구실 마련에 주력한다"며 "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파업이 도구화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추투의 이면에는 조합원들의 임금·복지 외에 또 다른 이슈가 있다. 노조 존재 이유인 조합원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추투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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