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시즌 태평양전에서 안타를 친 김형석. /사진=두산베어스
결국 OB는 2군 선수로 경기를 치렀고 126경기에서 53승 1무 72패의 전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8위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차지하며 가까스로 꼴찌는 면했다. 시즌 개막에 앞서 우승 후보로 꼽혔던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성적이었다.
KBO 시범경기 1위 팀…8개 구단 7위로 '풀썩'
1994년 9월4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역대 최고령(35세5개월) 완봉승을 기록한 박철순. /사진=두산베어스
대통령 앞에 선 양 팀은 총력전을 펼쳤다. 쌍방울은 에이스급 투수 3명을 투입했으며 5회에는 트리플스틸(삼중도루)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KBO리그에서 트리플스틸은 이제껏 단 7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OB에서는 선발 장호연이 5-1 리드를 잡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역전당해 5-8로 패배했다.
OB는 이 경기 이후 5월에는 5연패를 당해 8개 구단 중 7위로 내려앉았다. 시즌 중반을 들어서는 시점에 구단은 윤동균 감독 교체와 재계약을 두고 고민했고 결국 윤 감독에게 재계약 언질을 준다. 윤 감독의 조급증을 해소하려던 것. 그러나 OB는 또다시 5연패를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포스트시즌 레이스에서도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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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매를 들어야겠다" vs "못 맞겠다"
현역 시절 OB 베어스 소속이었던 윤동균이 은퇴 경기에서 공을 던져주는 모습. /사진=두산베어스
연회장에 모인 선수들에게 윤 감독은 "너희들은 게임을 하는 자세가 글러 먹었다. 오늘은 매를 들어야겠다"라고 말했다. 야구계 폭력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악습이었지만, 감독이 직접 매를 드는 일은 이례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주장 김상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며 "못 맞겠다"고 했다. 이에 윤 감독이 "못 맞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일어서봐라"라고 하자 선참 선수들이 하나둘씩 일어섰다.
윤 감독은 "말을 듣지 않을 거면 차라리 서울로 올라가 버리라"는 말과 함께 코치에게 "애들 저녁 먹여서 서울로 보내달라.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상호, 박철순, 장호연, 김상진, 이광우, 권명철을 비롯해 17명이 숙소를 집단 이탈했다.
전주역에서 흩어진 선수들은 대전역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열차를 타고 자정쯤 서울에 도착했다. 송파구 잠실운동장에 주차해둔 차를 타고 집에 들어간 선수들은 이탈 다음 날인 9월5일 경기 양평 플라자콘도에 집결했다. 그곳에서 윤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온 뒤 땅 굳듯…이듬해 '미라클 베어스' 신화
1995년 시즌에서 구단의 캐치프레이즈. /사진=두산베어스
당시 스포츠서울 보도에 따르면 윤 감독은 사의를 표명한 뒤 "폭력 감독이라는 누명은 벗고 싶다"며 "어쨌든 팀에 합류하지 않은 박철순, 김형석 등 고참 선수 5명이 다치지 않고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선수들을 복귀시키라는 팬들에 반발이 터져 나왔다. 구단은 결국 강영수를 제외한 16명 이탈자 모두를 다시 복귀시킨다고 결정했다. 시즌 내내 2군에 머무르다 사건 직전 1군으로 승격했던 강영수 선수는 선배라는 책임감 때문에 이탈에 합류했다가 홀로 방출됐다. 강영수는 이듬해 태평양 돌핀스에서 21홈런을 작렬하며 부활한다.
큰 사건을 치르고 나서일까. 1995년 김인식 감독이 합류한 OB는 '미라클 베어스' 신화를 만들어낸다. 1982년 원년 우승 이후 13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참고자료
두산베어스 공식 홈페이지